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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창선생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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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문헌
조선시대 때의 문신 · 학자, 정사신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21년에 간행한 시문집.
정의
조선시대 때의 문신 · 학자, 정사신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21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805년(순조 5) 정사신의 후손 정재후(鄭在厚)·정경제(鄭經濟) 등이 편집하고, 1821년 7대손 정내성(鄭來成)이 간행하였다. 권두에 김시찬(金是瓚)의 서문과 권말에 정내성의 발문이 있다.

서지적 사항

5권 3책. 목판본. 국립중앙도서관·규장각 도서·장서각 도서 등에 있다.

내용

권1·2에 연보와 부(賦)·시 142수, 권3에 소(疏) 4편, 서(書) 5편, 권4에 잡저 4편, 상량문 1편, 발(跋) 4편, 제문 9편, 애사 1편, 묘지 2편, 전(傳) 1편, 권5에 부록으로 교서·행장·행록·묘지·학암리사봉안문(鶴巖里社奉安文)·만사·조천증행시(朝天贈行詩) 등이 실려 있다.

소 가운데 「진정소(陳情疏)」는 1594년(선조 27) 경상도도사로 있을 때 올린 것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해 임금을 따라가지 못하고 뒤떨어진 사정과 그 뒤 강원도지방에서 토병(土兵)을 모아 왜적과 싸운 활동 등을 진술하고 있다.

「일강팔목소(一綱八目疏)」는 1608년에 올린 급무약소(急務略疏)로서 천덕(天德)은 신독(愼獨)의 다른 이름이라고 지적하면서, 신독을 일강으로 내세우고 임현물이개장공도(任賢勿貳開張公道)·거사물의보합대화(去邪勿疑保合大和)·부식정직이양원기(扶植正直以養元氣)·신명장안이혁탐오(申明贓案以革貪汚)·절용이애민(節用而愛民)·양병이무농(養兵而務農)·광추은신(廣推恩信)·근어경연(勤御經筵) 등 8조목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품정의장소(禀定儀章疏)」는 명나라에 가는 사신의 조복(朝服)은 우리나라의 것을 그대로 입고 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 내용이다.

잡저 가운데 「기자조주수봉변(箕子朝周受封辨)」은 주나라 무왕(武王)이 기자를 조선에 분봉(分封)한 사실이 없는데, 사마천(司馬遷)이 『사기(史記)』에 야사(野史)를 기록함으로써 기자분봉설이 나오게 된 것이라고 경사(經史)를 인용·변론한 것이다. 16세기 당시에 이미 기자조선에 대한 연구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참고가 된다.

「조완벽전(趙完璧傳)」은 정유재란 때 왜적에게 붙들려 일본에서 노예 생활을 하다가 그 주인을 따라 안남(安南)에서 행상(行商)하고 돌아온 조완벽의 이야기를 적은 것이다. 그 내용 가운데 가는 데마다 이수광(李睟光)의 시를 읊고 있더라는 기록이 특히 흥미를 끈다. 임진왜란으로 일본에 붙들려간 사람들의 연구에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고문진보전후집주석정오(古文眞寶前後集註釋正誤)」는 『고문진보』 전·후집의 주석에 대해 정·오를 표시하고, 바로잡은 곳에는 자기의 견해를 상세히 기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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