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 유씨(柳氏). 본관은 정주(貞州). 선종 때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를 지낸 유홍(柳洪)의 딸이다.
예종과 상당후(上黨侯) 왕필(王佖)·원명국사(圓明國師) 징엄(澄儼)·대방공(帶方公) 왕보(王俌)·대원공(大原公) 왕효(王侤)·제안공(齊安公) 왕서(王㥠)·통의후(通義侯) 왕교(王僑)·대령궁주(大寧宮主)·흥수궁주(興壽宮主)·안수궁주(安壽宮主)·복녕궁주(福寧宮主) 등 7남 4녀를 낳았다.
1079년(문종 33) 이전에 납비(納妃)되어 명복궁주(明福宮主)로 봉해졌다가 연덕궁주(延德宮主)로 고쳐졌으며, 1099년(숙종 4)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1105년 예종이 즉위하자 왕태후로 높여졌고, 이와 동시에 전(殿)을 천화(天和), 부(府)를 숭명(崇明), 생신(生辰)을 지원절(至元節)이라 하였다.
1112년 병으로 인하여 죽자 시호를 명의(明懿)라 하고 숭릉(崇陵)에 장사하였으며, 이후 1140년(인종 18)에 유가(柔嘉)를, 1253년(고종 40)에 광혜(光惠)를 시호에 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