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상산(商山). 자는 태중(兌仲), 호는 양진당(養眞堂). 김세진(金世珍)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형(金衡)이며, 아버지는 김장수(金長琇)이다.
1546년(명종 1)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1566년 천거로 군자감참봉(軍資監參奉)이 된 뒤, 영숭전후릉참봉(永崇殿厚陵參奉)에 재직 중 1568년(선조 1) 53세의 나이로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학유(學諭)·박사를 지내고 1574년에는 홍문록(弘文錄)에 올랐으며 감찰(監察)을 지냈다. 을사사화의 제현(諸賢) 신원(伸寃: 억울하게 입은 죄를 회복시킴)에 앞장섰으며 공신들의 위훈(僞勳: 거짓으로 꾸민 공훈)을 깎고 관작을 회복하자고 상소하였다.
많은 글을 지었다 하나 전하지 않으며, 또한 시에 능하였는데 서정이나 감상보다 덕(德)과 행(行)을 강조하고 있다. 저서로는 시문집 『양진당화산록(養眞堂花山錄)』 4권 2책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