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활산 고야촌

  • 역사
  • 지명
  • 삼국
신라 건국의 주체가 된 촌락세력.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기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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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신라 건국의 주체가 된 촌락세력.

내용

초기 경주 육촌(六村) 중의 하나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고조선의 유민이 경주에 정착하여 구성했다고 하는데, 명활산 서남쪽에서 낭산(狼山)에 이르는 일대에 위치한 듯하다.

《삼국유사》에는 호진(虎珍)이 하늘에서 금강산(金剛山)에 내려와 촌의 우두머리가 되었다고 하였다. 이는 사로부족(斯盧部族)을 구성한 씨족적인 사회조직일 것으로 생각된다. 뒤에 습비부(習比部)로 개편되었다. →습비부

참고문헌

  • - 『삼국사기』

  • - 『삼국유사』

  • - 「신라의 기원문제」(이병도, 『진단학보』 8, 1937 ; 『한국고대사연구』, 박영사, 1976)

  • - 「사로육촌과 경주고분」(김원룡, 『역사학보』 70, 1976)

  • - 「신라 상고시대의 육촌과 육부」(이종욱, 『진단학보』 49,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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