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흠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승지, 호조참판, 도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고석(孤石)
  • 우경(禹卿)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인조반정
  • 본관사천(泗川)
  • 사망 연도1641년(인조 19)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승지|호조참판|도승지
  • 출생 연도1572년(선조 5)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존희 (서울시립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목장흠 글씨 미디어 정보

목장흠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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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승지, 호조참판, 도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우경(禹卿), 호는 고석(孤石). 목희안(睦希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목세칭(睦世稱)이고, 아버지는 이조참판 목첨(睦詹)이며, 어머니는 증병조참판 정건(鄭謇)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99년(선조 32)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승문원부정자(承文院副正字)·봉교(奉敎)를 거쳐 전적(典籍)·감찰·사서(司書) 등을 지냈다. 이어 정언(正言)·지평(持平)을 거쳐 이조정랑이 되었으나 판서 기자헌(奇自獻)의 미움을 받아 고성군수(高城郡守)로 나갔다.

뒤에 직강(直講)·예빈시부정(禮賓寺副正)에 이어 응교(應敎)·집의(執義)·사복시정(司僕寺正) 등을 역임하고, 1613년 좌부승지가 되었다. 이때 이이첨(李爾瞻)·정인홍(鄭仁弘) 등이 영창대군(永昌大君)을 폐하려 하자 이를 저지하려다가 이덕형(李德馨)과 함께 연좌되어 청풍군수로 좌천된 뒤 고향으로 돌아갔다.

1623(인조 1) 인조반정으로 승지에 임명되고, 판결사·함경도관찰사·경주부윤 등을 거쳐 호조참판으로 비변사제조(備邊司提調)를 겸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는 왕을 모시고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였으며, 1641년 도승지가 되었다. 성격은 강직하였고 관후(寬厚)한 덕량이 있어 사람을 대하는 성의가 화기애애하였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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