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정주별선위사, 우승지, 첨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특히 1529년 정언으로 있으면서 선왕인 성종 때에는 문신과 무신들이 모두 재예(才藝)를 갖추어 임금의 총애를 받아 자신들의 재능을 모두 정치에 반영할 수 있었으나 오늘의 실정이 그렇지 못한 것은 임금의 책임도 없지 않다고 직언한 바 있다. 1531년 헌납이 되었고 이어 지평 · 검상 · 전한 · 집의 · 정주별선위사(定州別宣慰使) · 우승지를 거쳐 첨지중추부사 등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명종 초에는 『중종실록(中宗實錄)』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1553년(명종 8)에는 호군으로도 활약하였다. 말년에는 김안로(金安老) · 이임(李任) · 허항(許沆) 등과 함께 괘방서사건(掛榜書事件)으로 인하여 파직되었다. 한어(漢語)에 밝았고 사리판단 능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명종실록(明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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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진사 급제 : 『정덕8년계유8월20일생원진사방(正德八年癸酉八月二十日生員進士榜)』(여주이씨 옥산문중 전적(驪州李氏玉山門中典籍)-사마방목(司馬榜目)[보물 제5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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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六(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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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한어 능력 : 『중종실록』 54권, 1525년(중종 20) 6월 4일. "승문원 제조가 새 급제자 중에서 이문과 한어에 밝은 자를 선발하여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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