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회사 ()

근대사
단체
근대적 금융기관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도시 노동자 및 영세 상공업자 간의 자금 융통을 담당하였던 서민 금융기관.
내용 요약

무진회사는 근대적 금융기관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도시 노동자 및 영세 상공업자 간의 자금 융통을 담당하였던 서민 금융기관이다. 일본인 간에 자금의 상호 융통을 목적으로 운영되던 무진강(無盡講)에서 유래하였다. 일정한 구좌 수와 급부 금액을 정하여 정기적으로 괘금(掛金)을 납부하고 1구좌마다 추첨 입찰 또는 기타 유사한 방법에 의해 당첨된 괘금 납부자에게 금전을 급부하는 제도이다. 1915년 무진업법을 제정하고 1922년에 조선무진업령을 공포하여 전국 각지에 설립되었다. 중일전쟁 이후 금융통제를 위하여 전국에 1사만 남기고 통합되었다.

정의
근대적 금융기관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도시 노동자 및 영세 상공업자 간의 자금 융통을 담당하였던 서민 금융기관.
개설

무진(無盡)주1은 일정한 구좌 수와 급부 금액을 정하여 정기적으로 주2를 납부하고 1구좌마다 추첨 입찰 또는 기타 유사한 방법에 의해 당첨된 괘금 납부자에게 금전을 급부하는 제도이다. 이는 일본에서는 오래 전부터 있었던 관습으로 한국의 계(契)와 유사하였다.

무진업자는 1921년 7월 현재 77명이고 대부분 개인이었지만, 「조선무진업령(朝鮮無盡業令)」이 제정된 이후에는 무진회사가 일반적이었다. 무진회사 수는 1922년에 6개사였으나 1932년에 34개사로 증가하였으며, 가입 총 구좌 수는 3,978구에서 5만 9,146구, 계약급부액은 904만 원에서 8,113만 원으로 증가하였다.

설립목적

조선의 무진회사는 주무대신인 조선 총독의 인가를 얻어 설립되며, 설립의 목적은 영업 구역을 정해 무진의 방법으로 금전이나 주5을 급부하는 것이었다.

연원 및 변천

무진회사의 기원은 일본인 간에 자금의 상호 융통을 목적으로 하여 운영되던 무진강(無盡講)이며, 무진강은 개항기인 1877년경부터 부산, 목포, 군산, 인천 등 일본인 거류지에서 성행하였다. 무진이 이점도 있지만 폐해도 발생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교정하고자 일본에서는 1915년에 「무진업법」이 제정되었다. 조선총독부는 일본의 법을 인용하여 1922년에 「조선무진업령」을 공포하였다. 이로써 무진업은 법적 기초를 획득하였으며, 이후 개인 무진업자는 사라지고 무진업의 대부분을 차지한 것은 무진회사였다.

1922년 말 무진회사는 6개사에 불과했으나 법령 공포 이후에 전국 각지에서 무진회사가 설립되었다. 1924년에는 이들 무진회사의 대부분이 출석하여 조선무진협회를 창립하기도 하였으며, 1931년에는 「조선무진업령」이 개정되어 최소 자본금이 10만원으로 증액되었다. 무진회사는 1932년에 34개사로 증가하고 규모도 커졌다. 그러나 1935년부터 총독부가 무진회사 병립(竝立)의 폐해와 가입자 보호를 위해 1도 1사의 방침으로 무진회사 합동을 종용한 결과 1939년까지 거의 1도 1사 체제가

중일전쟁주3 이후 정세가 급변함에 따라 총독부는 금융 통제를 위해 다시 전국에 1사만 남기는 무진회사의 대 합동을 추진하였다. 이에 1941년 8월까지 조선중앙무진주식회사(朝鮮中央無盡株式會社)만 남게 되었다. 1937년 9월에 공제(共濟) · 흥업(興業) · 공립(共立) 3사의 합병으로 탄생한 조선중앙무진회사는 이후 17개의 무진회사를 합병하여 조선 유일의 무진회사가 되었으며, 1942년 8월에 조선무진주식회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기능과 역할

무진회사는 다른 금융기관과 마찬가지로 금전대차(金錢貸借)뿐 아니라 토지건물 임대차, 생산물 위탁판매 등의 재산관리를 겸하였지만, 무진강을 취급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금융회사였다.

의의와 평가

무진회사는 도시 노동자와 영세 상공업자와 중소 금융을 담당하였다. 무진회사 중에는 조선인 회사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 일본인 회사였다. 중일전쟁 이후 전국의 무진회사가 통합되면서 조선 유일의 무진회사로 남은 조선중앙무진은 조선신탁주4이 대주주여서 사실상 특수 금융기관의 하나로 변질되었다.

참고문헌

『식민지 조선의 통화 금융에 관한 연구』(배영목,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0)
『朝鮮無盡沿革史』(尾崎關太郞 編, 朝鮮無盡協會, 1934)
주석
주1

‘상호 신용계’의 전 용어. 우리말샘

주2

‘보험료’의 전 용어. 우리말샘

주3

1937년 루거우차오(盧溝橋) 사건에서 비롯되어 중국과 일본 사이에 벌어진 전쟁. 일본이 중국 본토를 정복하려고 일으켰는데 1945년에 일본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끝났다. 우리말샘

주4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조선에서 신용 기구를 통한 착취를 강화하기 위하여 만든 은행. 보통 은행의 업무를 겸하면서 농촌 수탈에 자금을 대 주고 식민지 산업을 지원하며 조선인에 대한 가혹한 착취와 약탈을 감행하였다. 우리말샘

주5

사법상 재산권을 표시한 증권. 권리의 발생, 행사, 이전이 증권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어음, 수표, 채권, 주권, 선하 증권, 상품권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집필자
박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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