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사천(泗川). 찬성사(贊成事) 목인길(睦仁吉)의 종제(從弟)이다.
1362년(공민왕 11) 홍건적의 침입을 물리친 정세운(鄭世雲)을 여러 장수들이 살해하고 비밀로 하였는데, 목충은 전선으로부터 와서 이 사실을 왕에게 고하였다.
1363년 홍건적의 침입을 피하여 복주(福州: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로 피난하였을 때 어가를 호종하였던 공으로 이등공신이 되었고, 또 개경을 수복한 공으로 일등공신이 되었으며, 같은 해 11월에 1359년 홍건적을 격퇴하였던 공적을 기록하면서 이등공신이 되었다.
1364년 최유(崔儒)가 원나라에 있으면서 원제(元帝)에게 참소하여 공민왕을 폐하고 덕흥군(德興君)을 추대하여 요양성(遼陽省)의 병사로 고려를 공격하러 온다는 소식이 들리자, 밀직부사(密直副使) 정찬(丁贊)을 서북면도안무사(西北面都安撫使)에 임명하여 이들을 막게 하였다.
그런데 목충은 정찬의 휘하에 병마사로 있으면서 종형인 재상 목인길의 세력을 믿고 정찬의 명령에 불복하고 오히려 정찬을 무고하여 죽게 하였다.
1377년(우왕 3) 왜구가 진포(鎭浦: 지금의 충청남도 서천)로부터 한주(韓州: 지금의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를 침입해오니 양광도원수(楊廣道元帥) 왕안덕(王安德)이 지원군을 요청해오자 출전하여 구원하였다. 1381년 찬성사 이득분(李得芬)과 더불어 이인임(李仁任)·최영(崔瑩)을 참소하다가 안동에 유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