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트막한 구릉을 배산(背山)한 마을의 안쪽 깊숙히 자리잡고 있으며 주위에는 대나무 숲이 둘러싸고 있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는 넓은 안마당이 마련되어 있으며, 사랑채 왼쪽에 맞닿아 중문을 두었다. 예전에는 헛간채, 광채·행랑채 등의 건물과 연못이 있어 제대로 격식을 갖춘 대농가였다고 하는데 현재는 안채와 사랑채만 있는 상태이다. 사랑채 상량문에 “숭정 기원후 6회 정묘…(崇禎 紀元後 6回 丁卯)”라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1927년에 건립된 것임을 알 수 있으며, 안채도 같은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안채는 一자형 평면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에 좌·우퇴가 있는 겹집형태이다. 실의 구성을 보면 서쪽으로부터 좌퇴의 앞쪽은 말리(마루의 사투리)로 사용하고 뒤쪽은 고방을 넓혀 사용하고 있다. 말리 옆은 서쪽방이라고 부르며, 고방과의 사이에 벽장을 두었다. 건물 중앙 3칸의 앞쪽에는 전퇴를 두어 우물마루를 설치하였는데 왼쪽부터 대청·큰방·정재이다. 대청은 제사를 모셨던 공간으로 뒤쪽 반칸이 앞쪽보다 5치 정도 높게 되어 있고 대청 중앙 상부에는 다락을 두었다. 큰방의 뒤쪽 반칸은 따로 골방을 두었는데 사이에 2짝 미닫이문을 설치하였다. 정재는 우퇴까지 터서 넓게 사용하였다. 예전에는 정재 앞의 툇마루를 지나서 정재로 들어가는 부분에 반칸 깊이로 찬마루가 있었으나, 현재는 정재를 모두 입식으로 개조하면서 찬마루가 없어졌다.
자연석을 한 단 높이로 쌓아 기단을 만들었고 둥근 화강암 초석을 놓았다. 전면에만 두리기둥을 세웠고 나머지는 네모기둥을 사용하였다. 홑처마를 사용한 팔작지붕 건물로 전체적으로 막새기와를 사용하였다.
사랑채는 一자형 평면으로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겹집으로 실의 구성을 보면 좌·우측 끝에 각각 상하로 방을 배치하고 가운데 2칸은 상하로 터서 사랑대청으로 사용하였다. 전퇴에는 우물마루를 설치하였고 뒤에는 쪽마루를 두었다. 주요한 구조부분은 안채와 동일하다. 대청에는 띠살문양의 4분합 들어열개문을 전면에 시설하였고, 양 끝에 위치한 방의 전면에는 띠살모양의 2분합 여닫이문을 달았다. 건물의 왼쪽으로 돌출한 벽장이 있는데 벽장 아래 함실아궁이를 두었다.
사랑채의 왼편으로는 한 칸의 중문을 두었는데 2짝의 판장문을 달았고 맞배지붕을 얹었다. 서로 지붕이 맞닿아 있는 사랑채와 중문의 틈새부분은 사랑마당쪽으로 2짝의 판장문을 달고 안마당쪽으로는 개방하여 수장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남부지방의 전형적인 一자형집으로 마당을 사이에 두고 사랑채와 병렬로 배치되었으며 직각방향으로 헛간채가 자리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아래가 트인 ㄷ자형 배치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