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전라남도 고흥군 포두면 금탑사에 있는 조선시대 에 창건된 사찰건물. 불전.
개설
역사적 변천
현재 금탑사에 소장되어 있는 목음각판재(木陰刻板材)를 통해,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사원 전체가 병화로 소실되자 1603년(선조 36) 왕순대사(王淳大師)와 궁현대사(窮玄大師)가 중건하였고, 1692년(숙종 18)에 또 다시 참화를 입었으며, 1845년(헌종 11)에도 천재지변을 당해, 1846년(헌종 12)에 중창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기록 이후 오랫동안 극락전만 남아 있다가 최근에 삼성각 · 성산각 · 종각 · 요사채 등이 건립되었다. 1992년 들어 보수된 바 있다.
내용
창방과 평방은 굵은 부재로 하여 길게 좌우로 빼냈고, 그 위에 주간포를 배치하였다. 주두(柱頭)와 평방(平枋)이 결구된 부분의 내부에 살미첨차들의 중첩을 보아지로 만들어 용머리를 밖으로 내놓았다. 외삼출목에 내사출목으로 건물 규모에 비하여 출목수가 많다.
살미첨차의 앙서[仰舌]부분은 둥그렇게 굽어 올라가지 않고 수직으로 깎아서 각을 이루고 있다. 첨차의 굽면 역시 둥그렇지 않고 경사지게 깎아서 강직한 맛을 풍기며 다소 큰 느낌을 준다.
내부에는 삼존불을 모셨는데, 2개의 대량에 걸쳐 고주를 세우고 닫집을 만들었으며, 연등천장[椽背天障]이면서 중앙 부분만 우물천장으로 한 후 보개천장(寶蓋天障)을 설치하였다.
보개천장과 내부 공포와의 사이에는 다시 빗천장을 설치하였으며, 용의 몸통 형상을 한 부재로 공포와 대량을 연결하여 설치하였다. 이런 모습은 귀공포에서도 나타난다. 바닥은 우물마루이며, 2분합의 문은 빗살로 그 규모가 대단히 크다.
내부의 단청은 잘 보존되었으나 외부의 단청은 1995년에 새로 하였다. 지붕부의 처마 밑은 공포로 휩싸인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크고 다소 세련미가 떨어진다. 약간 넓은 어간(御間)에는 2구의 주간포가, 협간(夾間)에는 1구의 주간포가 있고, 모서리 부분에는 활주(活柱 : 추녀뿌리를 받는 가는 기둥)를 세웠다.
특징
참고문헌
- 『문화재도록』3 (전라남도, 1998)
- 국가유산청(www.khs.go.kr)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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