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의 말사이다. 天燈山은 ‘千燈山(천등산)’이라고도 하는데, 옛날 인도의 가섭존자가 어머니를 위하여 천등 불사를 한 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신라 문무왕 때 원효(元曉)가 창건하였으며, 절 이름은 창건 당시 금탑이 있어 그렇게 불렀다고 하는데, 혹은 인도 아육왕(阿育王)의 금탑 건립 고사를 기리기 위하여 금탑사라 하였다고도 한다.
그 뒤 정유재란 때 불타버린 것을, 1597년(선조 30)에 궁현(窮玄)과 옥순(玉淳)이 중건하여 수백인의 승려가 머물렀다고 한다. 1644년(인조 22) 무가(無價)와 계환(戒環)이 극락전을 중수하였다.
그러나 1692년(숙종 18) 화재로 극락전을 제외한 전 당우가 소실되었고, 1767년(영조 43) 경징(鏡澄) · 획심(獲心) · 독일(篤日)이 극락전을 중건하였으며, 1834년(순조 34) 해월(海月)이 다시 극락전을 중건하였다. 1861년(철종 12)유명(有明)이 중창하였으나 일제강점기 이후 급속히 쇠락하였다.
최근에는 다시 중건 불사가 이어져, 1988년 무너진 산신각을 삼성각으로 고쳐지었고, 1991년에는 요사를, 1992년에는 극락전을 보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1985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금탑사 극락전을 비롯 명부전 · 삼성각 · 범종각 · 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이고, 범종각에는 너비 1.3m의 법고(法鼓)와 높이 1.7m에 무게 900근의 범종(梵鐘)이 보관되어 있다. 그 밖에도 약 250여 년 전에 제작된 괘불(掛佛)이 보관되어 있고, 1,000여 년 전에 그렸다는 원효와 의상(義湘)의 영정이 있어 주목을 끌지만, 그 연대에 대해서는 신빙성이 없다.
이 절 뒤에는 지상 약 5m의 바위틈에서 떨어지는 약수가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를 마시기 위하여 찾아온다. 또한, 절 주변에는 비자나무숲과 독치성(禿峙城) 등 유서 깊은 곳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