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三國遺事)』권3, 탑상 무장사미타전(鍪藏寺弥陁殿)조에 의하면 신라 제38대 원성왕의 아버지 효양(孝讓)이 그의 숙부를 추모하여 이 절을 창건하였으며, 태종무열왕[원문에는 태종(太宗)]이 병기와 투구(鍪)를 이 골짜기 안에 감추었기 때문에 이름을 무장사(鍪藏寺)라 하였다는 설화가 전한다.
이 절에 있었던 미타전은 어떤 진인이 석탑의 동남쪽 언덕에 앉아서 서쪽을 향하여 많은 대중들에게 설법을 하고 있는 꿈을 꾼 노승이 건립한 것이다.
이 미타전 안에는 소성왕의 비인 계화왕후(桂花王后)가 먼저 세상을 떠난 왕의 죽음을 슬퍼하다가 “아미타불에게 지성으로 귀의하면 구원을 맞이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재산과 재물을 다 희사하여 명장(名匠)으로 만들게 한 아미타불상과 신중(神衆)이 봉안되어 있었다고 한다.
일연(一然)이 『삼국유사』를 저술할 때까지 절은 남아 있었으며 미타전은 허물어졌다고 한다. 그 뒤 언제 폐허가 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현재 이곳에는 미타상을 조성한 인연을 적은 비문인 1963년 보물로 지정된 무장사지 아미타불 조상 사적비 및 귀부와 숲 사이에 방치되었던 폐탑을 1963년에 복원하여 보물로 지정한 무장사지 삼층석탑이 있다.
비신(碑身)은 왕희지(王羲之)의 글씨를 집각한 것인데, 1915년 파편 가운데 세 조각이 발견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중이다. 이 비편의 발견으로 절터가 무장사이었음이 확인되었다. 이밖에도 사방 0.9m인 석등(石燈)의 옥개석(屋蓋石)과 미타전의 자리로 짐작되는 곳에 10개의 초석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