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무역에 대한 연구는 경제학이나 상학·경영학의 일부로 다루어져 왔지만, 학문의 전문화 경향에 따라 그로부터 새롭게 하나의 독자적인 학문구성체계를 갖추어 파생된 것이다.
무역거래가 각 측면에서의 연구를 필요로 하는 이중적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무역학에 대한 연구도 어느 한 측면만으로는 체계화될 수 없다. 즉, 무역거래는 사적·개인적·기업적 거래에 입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공적·전체적·국가적 거래로서의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경영 및 상학 연구와 더불어 경제학적 연구의 접근방법이 동원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무역학의 체계는 무역거래의 이중적 성격을 중심으로, 경제학적 연구방법이 무역의 이론과 정책을, 그리고 경영 및 상학적 연구방법이 무역의 경영과 실무를 포용하여 하나의 독자적인 무역학체계를 구성하고 있다. 여기에서 무역의 이론이나 정책에 관한 연구는 공적·국가적 견지에서 무역거래의 발생 원인과 결과, 그리고 그 성립양태를 살피는 것이고, 무역의 실무와 경영에 관한 연구는 사적·기업적 입장에서 무역업의 경영과 무역행위를 성공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이치를 습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무역학의 연구체계와 그에 따른 연구대상 분야를 보면, 대략 다음 그림과 같다.
(1) 광복 이전의 연구동향
우리 나라에서 무역에 관한 연구가 발표된 것은 꽤 오래 전부터의 일이다. 대략 그 연원은 조선시대의 중·후반기에 등장했던 실학파 사상가들의 작품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손꼽을 수 있는 학자는 이익(李瀷)·유수원(柳壽垣)· 박제가(朴齊家) 등이다. 이들은 각기 자신들의 저서인 ≪성호사설≫·≪우서 迂書≫·≪총론사민 總論四民≫ 등에서 대외무역 및 상업활동에 관한 것들을 다루고 있었다.
한편, 1876년의 개항을 기점으로 이제까지의 쇄국정책이 무너짐으로써 일본을 비롯한 대외무역이 급속도로 확장되어 갔다. 그러나 이 당시의 무역에 관한 연구는 아직도 쇄국정책의 영향권을 벗어나지 못하여 1900년대까지는 별로 진전되지 못하였다.
그 뒤 1910년대 이후 민족항일기에 접어들면서, 무역에 관한 근대적인 연구가 비로소 전개되었으나, 이는 주로 일본의 필요에 따라 일본인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당시 우리 나라 무역은 일본의 경제권 속에 있는 지역무역으로 다루어졌다.
일본인에 의한 연구는 공공연구기관에 의한 것과 일본인 학자들에 의한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연구기관에서 펴낸 연구자료와 문헌으로는, 일한통상협회의 ≪협회보고≫(1895∼1905), 조선은행의 ≪조선 대 만주무역, 실정과 그 장래≫(1937), 조선무역협회가 펴낸 ≪무역통계연보≫ 및 ≪조선무역사≫ 등이 그 대표적인 것들이다.
한편, 연구학자들은 일본의 각 대학과 경성제국대학의 상경계 교수들이 주축이 되어 서적과 논문들을 펴냈다. 이들 연구기관과 학자들의 연구내용을 살펴보면, 식민지 경제를 구축하기 위한 자료의 완성 및 그 활용이라는 데 중점을 두고 펼친 것이 많다.
물론 삼국시대와 고려, 그리고 조선의 무역사(貿易史)에 관한 연구도 있었지만, 주로 ‘개항’이라든가 ‘금은무역’ 또는 ‘쌀·면화 등의 주요 산물에 관한 무역’, 그리고 ‘일·청 및 제2차세계대전과 조선무역’ 등에 관한 것이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한편, 이 시기에 우리 나라 사람에 의한 우리 경제나 무역에 대한 연구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몇몇 민족산업을 개발, 부흥시키기 위해 물산장려운동과 같은 실천운동이 있었으며, 또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소박한 경제와 무역지식이 개발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것은 대외무역에 관한 연구에까지 미치지는 못하였고, 다만 일제하의 새로운 자본주의 경제질서에 적응하기 위한 서구식 경제 지식의 습득과 국산품 장려 이론 등에 불과한 것이었다.
외국무역론에 관한 처음의 소개서로는 1908년 보성관(普成館)에서 출간된 유완현(劉玩鉉)의 ≪외국무역론≫을 들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인에 의한 국제무역관계의 연구 논설문으로는 노연학(盧延鶴)의 <외국무역론>(대한학회일보, 1908년 6월호), 문내욱(文乃郁)의 <무역상으로 觀한 영미법>(대한유학생회회보, 1907년 3월호), 최병찬(崔秉讚)의 <외국의 수입수출>(법정학계, 보전교우회, 1907년 1월) 등 학생회를 중심으로 한 것들이 있었다.
이와 같은 근대경제학이나 무역이론의 도입 및 소화 과정도 일제 식민지정책에 의해 매우 부진하였고, 1930년대에 이르러서야 사학인 보성·연희 두 전문학교에 비로소 무역 또는 외국 경제관계의 과목이 처음으로 설치되었다.
(2) 광복 이후의 연구동향
1945년의 광복과 1948년의 정부 수립을 맞아 대학과 연구기관의 증설 및 연구활동이 기대되었으나, 1950년의 6·25전쟁으로 서구의 경제 지식을 보급하는 데만 그치고 그 외의 연구활동은 무산되었다.
휴전 이후 1960년에 이르는 전후 복구기간에도 이러한 양상은 계속되었다. 다만, 여기에서 특기할 만한 사항은 이 기간 동안 많은 대학이 신설되있었고 국제경제학이나 외환론, 그리고 한국경제론 등이 각 대학의 주요 과목으로 채택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때 외국 무역이나 한국 무역 등 무역에 관한 글은 주로 국제경제학 또는 무역론이나 한국경제론의 일부로 다루어 발표되었다. 당시의 서적으로는 이창렬(李昌烈)의 ≪국제경제기초이론≫(장왕사, 1954), 이상구(李相球)의 ≪국제경제학≫(근영사, 1957) 및 ≪외환론≫(장왕사, 1955), 송영일(宋英一)의 ≪국제경제론≫(정연사, 1956), 이종화(李鍾華)의 ≪관세론≫(한국세정연구회, 1959) 등이 있었을 따름이고, 주로 미국 책을 번역한 외국 서적이 두세 권 있었으며, 그 밖에 몇 편의 연구논문만 엿보였을 뿐이다.
우리 나라에서 무역에 관한 이론과 실무, 그리고 여기에 따른 여러 연구를 묶어서 무역학이라고 부르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더욱이 우리 나라 무역에 관한 연구까지도 묶어서 무역학이라고 하고, 학문적 체계를 세워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우리 나라 각 대학에 무역학과가 설치되기 시작한 1960년 전후의 일이었다.
물론, 우리 나라 대학에 무역학과가 처음으로 설치되었던 것은 1946년 목포상과대학에서였지만, 그것이 본격화된 것은 1959년 서울대학교에 무역학과가 설치되면서부터였고, 점차 각 대학으로 확대되었다.
이와 같이 1960년대에 들어서서 무역에 관한 연구가 시동을 걸게 된 데에는 경제의 개발계획 및 정책이 구체적으로 입안되어 무역을 통한 경제성장이 제일목표로 추구된 데 힘입은 바 크다. 1962년부터 경제개발계획이 추진됨에 따라 각 대학에 무역학과가 설치되는 것뿐만 아니라, 무역 진흥을 위한 정부 및 공공기관과 민간단체의 설립도 가속화되었다.
그리하여 정부의 경제관계 부처와 기존의 한국무역협회, 대한상공회의소를 비롯한 대한무역진흥공사, 각 은행의 조사부, 한국경제개발협회(1965), 한국경제개발연구소(1965), 한국무역연구소(1963) 등의 연구기관과 각 대학의 상경계 교수들이 무역에 관한 연구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1960년대 초반 무역학이나 한국 무역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되어 많은 연구저작물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연구는 질적인 면에서 볼 때 연구대상을 다양하고 깊이 있게 다루지 못하고 주로 우리 나라의 경제개발이나 경제성장과 관련된 무역의 역할 또는 전략, 그리고 대외 수출시장의 조사라는 한정된 관점에서만 다루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이 방면을 연구하는 학자들이나 기관의 연구 수준이 아직 초기 단계에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1970년대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무역학과 한국무역학 분야의 구체적인 연구가 본격화되었다. 즉, 무역이론과 정책, 무역전략, 그리고 무역실무와 법규 및 외환에 관련된 구체적인 한국 무역에 대한 연구가 진행된 것이다. 전국 각 대학의 무역학과 교수들의 연구활동을 비롯하여 각 대학의 상경 계통 연구소의 설립과 활동, 무역대학원의 설립과 활동, 한국무역학회를 비롯한 각종 학회 및 연구기관의 설립과 활동이 그와 같은 연구 경향을 뒷받침하였다.
특히 1971년에 설립된 한국개발연구원(KDI) 및 1977년에 창설된 산업연구원(창설 당시는 국제경제연구원) 등은 경제·무역에 관한 종합적인 전문연구기관으로서 많은 연구자료와 학술지를 펴내어 한국 무역학의 발전에 큰 보탬이 되어 왔다.
1950년대부터 1970년까지의 20년 동안에 생긴 상경 계통의 학회 수는 5개 내외이고, 연구소 및 연구원도 약 20개 안팎이었다. 그러던 것이 1970년부터 1980년까지의 10년 동안에 무역학회를 비롯하여 5개 정도의 학회가 더 생겨났고, 대학부설 연구소만 해도 약 50개 정도로 크게 증가하였다.
이렇듯 연구기관의 수가 확대됨과 더불어 무역에 관한 학술단체의 간행물 수도 1970년 이전까지는 약 7, 8종에 불과하던 것이 1980년에 이르러서는 약 30여 종으로 크게 증대되었다.
그 밖에 각 대학 무역학과의 교재 개발도 대부분이 1970년대 이후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하여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의 무역학은 정상 궤도에 진입했다고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역학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가 비록 다른 상경계의 학문보다는 늦게 출발했지만, 무역이 우리 나라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되면서 급속히 진척되었다.
그리하여 오늘날 전국 대학의 전공학과별 학생수 규모로 보아도 무역학과가 제3위를 차지할 정도로 그 비중이 크게 신장되었으며, 무역학을 연구하는 전공 교수도 약 300여 명에 이르고 있다. 여기에 무역학 연구와 관련되는 연구기관 및 전문학자의 수를 합치면 더욱 많은 수가 무역학 분야에 종사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이들의 연구 경향은 이전의 이론 및 정책과 실무라는 기초 분야에 한정되지 않고, 좀더 다양한 분야로 세분화되고 심화되는 경향을 띠고 있다. 그리하여 초보 단계적 연구활동에서 이론 연구의 심화는 물론 무역관습, 무역에 관한 법규, 국제계약법, 무역보험, 신용장론, 선화증권 등에 대한 다양하고 세분화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 나라의 무역학은 비교적 단시일에 급속히 발전되어 왔지만, 그 발전 이면에는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우리 나라 무역학 연구의 비체계성을 들 수 있다. 이는 우리의 무역학이 그 독자적인 학문체계를 구성하기도 전에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무역을 통한 국민경제의 발전이라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느라 급급한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앞으로는 산만한 연구 실적 및 연구태도를 지양하고 체계화된 연구를 토착화시켜야 할 것이다.
둘째, 각 대학 무역학과의 교과목이 지나치게 다기화(多岐化)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한국 무역학 연구를 체계화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 바탕을 이루는 이들 교과목도 체계화, 정형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나 교과목이나 학문체계는 주어진 채로 고정될 것이 아니라 시대와 환경 변화에 따라 능동적으로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선진 외국에서도 독자적인 학문체계를 가진 무역학 전공 분야가 독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학문적으로 아직 미진한 상태에 있는 우리로서는 어떤 지표의 대상이 될 만한 것이 없어서 연구대상에 대한 개발이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와 함께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무역학 연구의 국제교류가 미진하여 이러한 현상이 더욱 가증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볼 때, 무역학에 대한 연구는 경제학이나 경영학과는 분립되어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학문체계를 구축해서 정착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더욱이 1990년대 이후 급격한 세계화와 국제무역의 새로운 재편을 가져온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및 21세기 지식정보화사회의 도래는 전 보다는 한 차원 높은 무역질서를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무역도 새로운 질서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정책과 제도의 틀을 체계적으로 다듬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이며, 무역학은 이러한 문제를 선도적으로 해결하고 헤쳐 나가야 할 막중한 과제를 안고 있다고 하겠다.
물론, 이들을 풀어 나가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이 방면의 많은 교수·학자·연구자 및 후학들이 있어 무역학의 새로운 발전과 성장에 커다란 성과를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