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전주 동계유니버시아드 경기대회 (· universiade )

체육
의례·행사
1997년 1월 24일부터 2월 2일까지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무주 · 전주에서 개최된 제18회 동계유니버시아드 경기대회.
정의
1997년 1월 24일부터 2월 2일까지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무주 · 전주에서 개최된 제18회 동계유니버시아드 경기대회.
개설

“젊음을 한 곳에, 세계를 품안에”라는 대회 슬로건 아래 전세계인들의 눈과 얼음의 대축제인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가 1997년 1월 24일부터 2월 2일까지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무주와 전주에서 빙상 · 스키 · 바이애슬론 · 아이스하키 4개 종목에 50개국 2,6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이 대회는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동계 국제종합경기대회인 만큼 준비의 소홀함이 비춰지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하였으나 성공적으로 치루었다.

1993년 미국 버팔로에서 열린 FISU 집행위원회에서 전북도가 1997년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개최지로 확정된 이후 우리나라는 곧 조직위원회를 구성하여 대회준비에 박차를 가하였다. 우리나라로서는 처음 개최하는 동계 국제종합대회였기 때문에 준비해야할 것은 하나 둘이 아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급한 것은 경기장 시설이었다.

유치 당시에는 대중용 슬로프를 갖춘 무주스키장 외에는 동계체육시설이 전무하였고, 무주스키장도 경기시설에는 부적합하였다. 더구나 국제대회를 치룰 만한 활강코스나 점프시설은 엄두도 내지 못할 형편이었다. 그러나 전주-무주의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의 유치로 2,400여억 원을 들여 빙상경기를 위한 링크도 마련되고 스키장도 국제시설로 탈바꿈되었다.

개막 행사

1997년 1월 24일 오후 3시 무주리조트 내 점핑파크에서 개막식을 거행하였다. 공개행사는 음악과 미술 · 무용 등이 함께 어우러지는 종합예술일 뿐만 아니라 철학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어야만 성공작으로 남게 되는데, 대회조직위원회는 식전 공개행사를 ‘고천(告天)’이라는 이름으로 준비하였다.

농사 짓기 전에 하늘에 알려 축복을 빈다는 뜻의 고천은 무주벌에서 세계의 젊은 지성들이 모여 축제를 시작하였음을 알리고 성공을 기원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고천이라는 식전 공개행사를 마친 뒤 거행된 개막식은 김영삼 대통령 내외와 프리모 네미올로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 회장, 김운용(金雲龍) 대한올림픽위원장 겸 IOC위원, 안톤기싱크 IOC 위원, 유종근(柳鍾根) 전북도지사, 고병우 대회조직위원장을 비롯한 국제경기연맹회장 등 200 여 명의 국내외 체육계 인사가 참가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애국가 제창에 이어 대회앰블렘과 FISU기가 식장에 들어섰고 그 뒤를 따라 선수단이 입장하였다. 한글 가나다 순으로 진행된 선수단 입장은 올림픽 발상지인 그리스선수단을 시작으로 한국이 맨마지막인 50번째로 입장하였다.

[그림 1] 대회앰블렘

대회앰블렘은 한국을 나타내는 태극색상과 U자의 형태를 의인화하고 마주보게 함으로써 화합과 원대한 포부를 상징적으로 나타냈으며, 마스코트인 ‘무돌이(MUDORI)’는 민첩하고 총명한 다람쥐의 밝고 맑은 표정으로 희망찬 동계U대회를 표현하였다.

[그림 2] 대회마스코트

선수단 행진시에는 그 나라의 전통 행진곡을 연주함으로 선수들의 흥을 돋구었다. 고병우 대회조직위원장은 환영사에서 경기력 향상과 더불어 지구상의 모든 전쟁과 갈등을 해소하고 화합하는 지구촌을 건설하자고 강조하였으며, 프리모 네비올로 FISU위원장은 대회사에서 훌륭한 경기장 시설을 갖춰준 대한민국 국민에게 고마움의 뜻을 전하였다.

5,000여 개의 풍선이 하늘을 가득 메운 가운데 대통령이 대회개회를 선언하였고 대회기 게양과 함께 성화가 입장하였다. 성화의 최종 주자인 허승욱과 김소희가 대회장을 한바퀴 돈 뒤 본부석 오른쪽 뒤에 설치된 성화대에서 기다리고 있던 점화자 김기훈(金琪焄)에게 성화를 넘겨졌다.

1992년 알베르빌과 1994년 릴리하머 동계올림픽에서 쇼트트랙 남자 1,000m 연속 우승자인 김기훈은 마치 나무기둥으로 울타리를 쳐놓은 듯한 성화대에 불을 당겼다. 크로스컨추리에 참가한 박병철과 알파인의 김유진에 의해 선수단 선서가 이어지면서 본식은 모두 막을 내리고 식후 공개행사로 접어들었다.

개막식의 하이라이트인 식후 공개행사는 ‘상생(相生)’이라는 제목으로 펼쳐졌다. ‘함께 산다’는 뜻의 상생은 한국문화의 기층을 이루는 모든 생명체와 더불어 사는 삶을 간명한 율동과 음악으로 형상화시켰으며,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자연물에 이르기까지 서로의 이질성을 대립과 갈등이 아니라 조화와 융합으로 하나의 생명으로 통합해 나가는 과정을 그려 나갔다.

‘상생’은 젊은이들이 그려나갈 평화롭고 창조적인 아름다운 상생의 세계를 숲속의 동물과 사냥꾼으로 우화해서 무용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먼저 눈의 요정이 등장하여 평화롭고 아름다운 숲의 세계를 그렸고, 그 속에서 즐겁게 뛰어노는 동물들의 모습으로 시작하였다. 이때 갑자기 활을 든 사냥꾼이 등장하면서 평화롭던 숲은 분쟁이 일고 자연이 파괴된다.

사냥꾼으로부터 위협받는 숲을 지키기 위해 학들이 등장하고 폭력과 탐욕의 세계를 학의 하얀 날개로 덮어준다. 그러나 악의 상징인 사냥꾼은 선의 상징인 학의 수장을 활로 쏘아 상처를 입히면서 숲은 더욱 악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된다. 이때 신선이 나타나 학의 수장을 치료해주고 사냥꾼을 교화시키면서 학과 함께 화합하는 세계를 열었고 숲은 다시 동물들의 평화롭고 희망에 넘치는 이상향이 된다는 것이 ‘상생’의 전체적인 줄거리다.

개회식의 끝마무리는 행사자 전원과 선수단이 가수 김수철의 ‘젊은 그대’를 함께 부르고 춤을 추는 것으로 마지막을 장식하였다. 한편 폐회식은 폭죽을 신호탄으로 풍년을 기원하는 쥐불놀이를 시작으로 전통 스키단 하강, 줄다리기춤, 사물놀이패의 한바탕 춤 등 한국적인 것으로 꾸몄다. 특히 이날 폐회식에서는 아이도프 영상을 투여하여 입체감을 높였으며, 전광판에 다음 대회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는 메시지가 나타나고 대회기를 조지 킬리안 FISU 부회장에게 넘기면서 10일간의 일정을 모두 마감하였다.

이번 대회의 개 · 폐회식과 공개행사는 대단히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짜임새 있고 간결하게 표현된 공개행사는 오히려 올림픽보다도 앞선다는게 국내외 체육지도자들의 한결같은 의견이었으며 기획과 연출력이 매우 돋보여 FISU 회장으로부터 역대 “U대회 사상 최고”라는 평을 얻어내 다시 한번 한민족의 높은 예술과 문화의식을 과시하였다.

대회 연혁

유니버시아드경기대회는 세계 대학생간의 우호와 친선을 목적으로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이 2년마다 주최하는 범세계적 대학운동경기다. 이 경기대회의 원래의 명칭은 ‘University Olympiad’였다.

하계대회는 1928년 파리에서 개최된 제1회 국제학생경기대회에서 비롯되었으나, 동계대회는 1960년 프랑스 샤모니에서 개최된 대회가 시초였다. 현재 명칭은 1959년에 이탈리아의 토리노대회 때부터 유니버시아드(Universiad+Olympiad)대회로 바꾸어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국제대학스포츠연맹의 헌장에는 대학스포츠의 개발, 학생의 신체교육과 도덕교육, 그리고 각국 학생간의 긴밀한 교우와 국제대학스포츠의 단결을 위한 협력이 이 대회의 목적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세계 어느 곳에서라도 대학스포츠의 발전을 위한 최대의 선전을 확보하고 그 성과를 공표하는 일, 세계의 학생을 위하여 각종 국제스포츠대회를 개최하는 일, 인류의 일반적인 발전요인으로서 아마추어스포츠의 이상을 수호하는 일 등을 수행하기 위하여 적극 노력한다고 밝히고 있다.

참가자격은 각국의 문교당국이 인정하는 대학 또는 그에 준하는 학교의 재학생과 대회가 개최되는 해의 2년전 졸업생까지 해당되며, 연령은 개최년도의 1월 1일을 기준으로, 만 17∼27세까지에 해당되는 연령이어야 한다. 홀수해에는 하계대회를 개최하고, 짝수해에는 동계대회를 개최한다.

또한 매 대회마다 대학스포츠연구회의(CESU)라는 학술대회를 개최함으로써 경기와 더불어 스포츠의 학술적인 발전도 꾀하고 있다.

대회 성적

우리나라는 1968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동계대회 때부터 참가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최근에는 쇼트트랙의 경기력에 힘입어 1991년 종합 3위, 1993년 종합 5위, 1995년 종합 2위라는 획기적인 전적을 올렸다.

유니버시아드대회는 동서냉전시대에만 하여도 올림픽 전초전이라고 불릴 정도로 경기력도 높고 메달전략에 쏟는 각국 선수단의 관심이 컸고, 국가대표선수들이나 그에 못지 않은 선수들이 출전하여 치열한 메달레이스를 펼쳤다.

1970년대와 1980년대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를 구소련이 휩쓸었던 것만 보아도 냉전시대에서 체제의 우위를 스포츠를 통해 과시하려는 의욕이 보인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유니버시아드대회가 순수한 대학생들의 축제인 만큼 경기결과 보다는 과정을 더 소중히 여기고 우정과 낭만을 중요시하는 흐름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무주와 전주에서 열린 제18회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에 참가한 우리나라 선수단은 금메달 5개, 은메달 2개, 동메달 5개로 종합순위 6위를 차지하였다. 우리나라는 메달박스인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경기에서 금메달 4개를 획득하였고, 스피드스케이팅에서도 2개의 금메달을 추가하였다.

한편 종합우승은 알파인과 노르딕 · 피겨 · 쇼트트랙 · 바이애슬론 · 스피드스케이팅 등 전종목에 걸쳐 고른 기량을 보여 금메달 9개, 은메달 9개, 동메달 7개를 획득한 일본이 차지하였다.

종목별 우승자와 우리 선수들의 전적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이번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는 참가국과 선수의 수가 많은 만큼 대회의 수준도 매우 높았다. 스키 알파인의 경우 선수들의 기량을 알 수 있는 FIS포인트가 매우 좋은 선수들이 대거 참가함으로써 당초 메달권에 진입할 가능성이 엿보였던 우리 나라 알파인스키의 강자 허승욱과 변종문이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허승욱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주종목인 회전에서 12위, 복합에서 15위에 머물러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하였고, 변종문도 대회전에서만 19위를 기록하였다. 알파인스키에서는 슬로베니아가 맹위를 떨쳐 미란 라우더가 2관왕에 오르는 등 금메달 3개를 가져갔고 스위스와 스웨덴이 하나씩의 메달을 획득하였다. 여자의 경우 한국선수단은 신숙재 · 박세영 · 지 인 등이 참가하여 모두 2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슬로베니아는 여자부에서도 안드레야 포티스크리비치가 3관왕을 하는데 힘입어 5개 중 4개의 금메달을 획득했고, 일본의 야마가와 준코가 예상을 뒤엎고 회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여 파란을 일으켰다. 크로스컨추리 남자부에서는 체코와 분리된 슬로바키아가 전종목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는데 슬로바키아의 이반 바토리가 전종목에서 우승, 이번 대회 최다관왕인 4관왕에 올랐다.

여자부에서는 러시아의 이울리아 레멘츠크가 금메달 3개을 획득해 3관왕에 올랐고, 일본의 오가타 도노미가 10㎞경기에서 우승하였다. 일본은 90m단체와 120m개인경기에서 금메달 2개를 획득하였고, 폴란드는 점프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바이애슬론 경기 여자부에서는 엘레나 마슬로프가 전종목을 휩쓸면서 러시아에 금메달 2개를 추가시켰고 남자부는 체코와 프랑스, 그리고 러시아가 금메달을 하나씩 나누어 가졌다.

우리나라 선수들도 열심히 뛰었지만 스키종목에 출전하였던 선수들이 세계 상위 랭커여서 스키에 약세를 보이고 있는 우리 선수단이 상위권에 진입하기란 쉽지 않았다. 아이스하키는 결승전에서 체코가 핀란드를 3:2로 이겨 우승을 차지하였으나 아이스하키의 강국으로 불리는 캐나다와 러시아의 3, 4위전 경기가 더욱 인기를 끌었다.

스피드스케이팅에서는 일본의 야마가케 히로아키가 500m와 100m 등 단거리 종목에서 우승을 차지하였고, 우리 나라의 이규혁은 주종목인 1000m에서 9위에 머무르는 부진을 보였으나 500m에서 2위를 차지하였으며, 1,500m · 5,000m ·1만m에서는 네덜란드선수들이 우승하였다. 여자부에서는 중국의 양취우안이 500m에서 우승을 차지하였고, 우리나라의 간판스타 천희주는 1,000m에서는 우승을 차지하였으나 500m에서 아쉽게 동메달에 머물렀다.

우리나라 팀은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 1개, 은 1개, 동 2개를 따내는 활약을 하였다.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중장거리인 1,500m ·3,000m ·5,000m에서 네덜란드의 레나테 그뢰네볼트는 중장거리 3종목에서 우승을 차지해 네덜란드가 스피드스케이팅의 강국임을 과시하였다.

동계스포츠의 꽂이라고 불리는 피겨스케이팅에서는 세계 최강인 러시아가 남자싱글과 아이스댄싱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고 여자 싱글에서는 일본이 금메달을 차지, 최근 여자 싱글계에 강세를 보여 온 일본 피겨의 자존심을 이어나갔다.

페어 부문에서는 러시아의 우승이 예상되었으나 중국팀이 우승을 차지하여 중국의 피겨스케이팅이 놀라운 속도로 향상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남자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중국은 500m와 1,000m에서 리자준이 금메달을 획득하여 목표치를 달성한 반면, 우리나라의 채지훈은 허리부상으로 메달권에 들지 못해 온 국민이 아쉬워하였다.

우리나라 팀은 3,000m에서 단국대학교의 이호응이 마지막 2바퀴를 남겨놓고 역주를 거듭하여 1위를 거의 반바퀴 차로 제치고 우승을 하였고, 5,000m에서는 우리나라와 중국이 마지막까지 치열한 접전을 벌인 결과 막판 스퍼트에 앞서 가던 우리나라를 뒤에서 민 중국팀의 실격으로 역시 금메달을 추가하였다.

여자부 500m와 1,500m에서 중국팀은 작전과 팀웍이 빛을 발해 우승을 차지하였고, 우리 나라 팀은 1,000m에서 전이경이 마지막 반바퀴를 남겨 놓은 시점에서 1위를 독주하다가 넘어짐으로써 우승을 중국에 넘겨주는 듯했으나 막판 혼신의 힘을 전력 질주한 김소희가 스케이트날 1/2차로 먼저 들어와 이번 대회 가장 아슬아슬한 금메달을 손에 넣었다.

또한 전이경은 3,000m에서 세계랭킹 1위로서의 자존심을 살려, 가지고 있는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1위로 독주하여 우승하였으나, 3,000m계주에서는 기량을 고루 갖춘 중국팀에게 아쉽게 져서 은메달에 머물렀다.

이번 대회에서 우리나라는 비록 종합 6위에 머물렀지만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첫 국제종합대회에서 선전하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동계종목의 메달 대부분을 쇼트트랙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종목의 균형적인 발전도 숙제로 떠올랐다.

우리나라는 1995년에 개최된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2위라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바 있지만 시설이나 선수층의 빈곤으로 동계스포츠의 강국으로 불리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았다.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의 유치는 그 동안 부족했던 우리나라 동계스포츠시설에 숨통을 터주는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아니라 지역적인 동계스포츠 발전의 균형을 이루는 첫걸음이 되었다.

시설면을 보면, 무주에는 총길이 2,100m에서 2,250m에 이르는 국제규격의 활강코스가 완비되었고 슈퍼대회전과 기존의 회전, 대회전 코스를 정비하여 참가국 선수단을 놀라게 하였다. 또한 조직위원회는 쌍방울개발과 함께 K-120과 K-90의 스키 점프대도 무주리조트 내에 갖추어 이번 대회를 계기로 무주는 세계적인 스키 관광지 중 하나로 떠오르게 되었다.

무주리조트는 10㎞에 이르는 크로스컨추리 경기장을 완성시킴으로써 스키경기장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추게 되어 21세기 동계올림픽유치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또한 동계스포츠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전주와 무주를 비롯한 전북 지역 사람들에게 동계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다.

피겨스케이팅과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이 열린 제1빙상장은 우주선과 같은 외양에 가로 61m, 세로 30m의 국제 규격을 갖추었다. 88서울올림픽 이후 국제대회를 처음 개최하는 우리나라였지만 최대의 대회를 최상의 잔치로 이끄는 저력을 발휘하여 다시 한번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다만 대회 운영상은 최고의 대회였다는 평가를 내리기에는 부족한 면도 존재했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1999년 동계아시아경기대회, 2002년 부산아시아경기대회를 치룰 예정이며 앞으로도 많은 대회 유치를 계획하고 있다. 국제종합경기대회는 우리나라를 전세계에 알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이다. 따라서 앞으로 다가올 대회준비는 보다 완벽하고 짜임새 있는 준비로 성공대회의 맥을 지속해 나가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97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한국선수단편람』(대한대학스포츠위원회, 1997)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정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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