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학

  • 역사
  • 인물
  • 개항기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때, 연해주에서 대한독립군결사대에 가담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이칭
  • 이칭문언준(文彦俊)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23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82년(고종 19)
  • 출생지함경북도 온성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강영철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연해주에서 대한독립군결사대에 가담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개설

일명 문언준(文彦俊). 함경북도 온성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한때 함경북도 신건원(新乾源)에서 일본 헌병보조원이었으나 1919년 3·1운동에 참가하고 만주로 망명하였다.

1920년 청산리전투 이후 만주에서의 독립운동이 어려워져 김학섭(金學燮) 등이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가 대한독립군결사대(大韓獨立軍決死隊)를 조직하자, 여기에 가담하였다.

이들은 연해주에서 기관총·소총·권총·탄약 등을 구입하여 무장을 갖추고 10여 명이 국내로 들어와 웅기(雄基)의 경찰서와 금융조합을 습격하여 무기와 군자금을 취득하기로 결의하였다.

각 단원은 소총 1정과 탄약 150발과 폭탄 2개씩을 분배받고 대장 김학섭의 인솔로 웅기로 향하였으나, 국경지대의 일본군이 출동하므로 계획을 변경하여 신건원주재소를 습격하기로 하였다.

1921년 1월, 그 지역의 일행을 인도하여 주재소를 습격, 일본경찰을 사살하고 주재소 숙사를 파괴하였다. 1923년 일제 밀정의 밀고로 김학섭 외 13명이 일본영사관 경찰에 잡혀 1923년 5월 25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사형이 언도되자 항소하였으나 기각되었다.

상훈과 추모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김후경, 광복출판사, 1983)

  • - 『동아일보(東亞日報)』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