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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이괄의 난을 고변하여 녹훈되었으나, 그 이후에도 공을 탐내 무고를 한 것이 밝혀져 신임을 받지 못했던 문신·공신.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이괄의 난
  • 사망 연도1634년(인조 12)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진무공신|가선대부|가의대부
  • 출생 연도1586년(선조 19)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오수창 (서울대학교규장각,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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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이괄의 난을 고변하여 녹훈되었으나, 그 이후에도 공을 탐내 무고를 한 것이 밝혀져 신임을 받지 못했던 문신·공신.

생애 및 활동사항

1624년(인조 2) 전임 교수(敎授)의 신분으로 이우(李佑)·김광숙(金光肅)과 함께, 윤인발(尹仁發) 등이 인성군(仁城君) 이공(李珙)을 추대하는 역모를 꾸민다고 고변하였다. 이에 기자헌(奇自獻)·김원량(金元亮) 등 40여 인이 투옥되었으며, 곧 이괄(李适)의 난이 터지자 그 대부분이 처형당하였다.

난이 평정된 뒤 진무공신(振武功臣) 3등에 책록, 가선대부가 되었다. 1625년 다시 박응성(朴應晟) 등의 역모를 고발하였으나 공을 탐낸 무고임이 밝혀져 절도에 정배되었다. 그 뒤 풀려나 1628년 오천군(鰲川君)에 봉하여지고 가의대부에 올랐다. 비록, 공신이었으나 고변으로 인한 것이었으므로 일반 사림의 신임을 받지 못하였으며, 박응성 등을 무고한 것은 지탄을 받았다.

참고문헌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청선고(淸選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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