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무구의 옥

  • 역사
  • 사건
  • 조선 전기
조선 태종 때 외척 세력인 민무구(閔無咎)·민무회(閔無悔) 등 4형제에 관한 옥사(獄事).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홍순창 (대구대학교, 동양사)
  • 최종수정 2023년 08월 22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태종 때 외척 세력인 민무구(閔無咎)·민무회(閔無悔) 등 4형제에 관한 옥사(獄事).

개설

조선 초기 태종과 정비(靜妃) 원경왕후(元敬王后)와의 불화를 계기로 원경왕후의 동생들인 민씨 형제가 차례로 화를 당한 사건이다.

내용

정비 원경왕후는 조선 초 문하우정승(門下右政丞)을 지낸 민제(閔霽)의 딸로서 태종이 등극할 때까지 여장부로서 명석하게 내조를 잘했다. 그런데 왕위에 등극한 뒤 태종은 잉첩(媵妾 : 곁에서 모시는 시녀)들만 가까이하였다. 이에 원경왕후가 투기를 보이자 불화가 잦아지게 되었고, 두 사람 사이에 틈이 벌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와중에 외척 세력으로서 아버지 민제와 왕비인 원경왕후의 권세를 믿고 활개를 치던 민씨 형제들이 탄핵을 받게 되었다. 즉, 궁중에 들어가 종친에게 무례할 뿐 아니라 종친간에 이간을 꾀하였다는 혐의로 개국 · 정사(定社) · 좌명(佐命) 등 삼공신의 탄핵을 받게 된 것이다.

1407년(태종 7) 가을 삼공신이 모여 민무구 · 무질(無疾) 형제를 논죄할 때 판예빈시사(判禮賓寺事) 박은(朴訔)이 병으로 불참하자 대간(臺諫)은 박은을 민무구 형제의 당이라고 지적하면서 잡아 가둘 정도였다. 그러나 박은은 곧 석방되었다.

다음 해 간관들이 대사헌 박은과 장령(掌令) 신간(申僩)에게 민무구 형제의 논죄를 천연시켰다는 이유로 죄줄 것을 청하자, 태종은 노해 신간을 귀양보내고 박은을 좌천시켰을 뿐 민무구 형제의 논죄는 거론하지 않았다. 이것은 장인인 민제의 후덕함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민제가 죽자 1409년 정부 및 삼공신들이 민무구 · 무질 형제를 비롯해 여당인 이무(李茂) · 윤목(尹穆) · 유기(柳沂) · 조희민(趙希閔) · 이빈(李彬) · 강사덕(姜思德) 등의 처형을 강력히 청하고 나섰다. 이에 태종은 민무구 형제를 해도(海島)에 부처(付處)하게 하고, 나머지 죄인에 대해서도 주청한 대로 시행하도록 하였다.

그 뒤 1410년 태종은 종친과 정부의 강력한 주청에 따라 민무구 · 무질 형제를 자진(自盡)하도록 하였다. 얼마 뒤 민무휼(閔無恤) · 민무회(閔無悔)가 누이인 원경왕후가 병환으로 눕게 되자 문안차 입궐하였다가 세자인 양녕대군(讓寧大君)에게 두 형의 억울함을 호소한 것이 정가에 전파되어 국문을 받은 뒤 원지로 부처되었다.

그 뒤 1416년 정부의 강력한 주청으로 민무휼 · 무회 형제도 사사되고 처자들은 먼 지방에 안치됨으로써 여러 해 동안 끌었던 민씨 형제에 관한 옥사가 끝이 났다. 이 옥을 계기로 민제의 4형제는 외척의 몸이 된 것이 화근이 되어 오히려 비참한 희생을 당하였다. 이들이 숙청당하게 된 것은 태종의 왕권 강화책과 무관하지 않다.

즉 외척 세력의 대두를 억압하기 위한 경종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이 옥은 또한 태종과 원경왕후의 불화가 사건 자체를 확대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희생만으로 그친 것이 아니고 고려구가세족(高麗舊家世族) 등의 관계로 얽혀서 많은 사람들이 연관되어 격렬한 정치 파동을 일으켰던 큰 사건이었다.

참고문헌

  • - 『태종실록』

  • - 『연려실기술』

  • - 『동각잡기(東閣雜記)』

  • - 「태종의 외척제거에 대하여-민씨형제의 옥-」(김성준, 『역사학보』 17·18합집호, 1962)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