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첨지돈녕부사, 동지돈녕부사, 함흥부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408년 정랑으로 재직 중 좌랑 장안지(張安之)의 전지개량절급(田地改量折給)을 둘러싼 부정사건에 연루되어 파직되었다. 1428년(세종 10) 첨지돈녕부사·동지돈녕부사를 거쳐, 같은 해 진하사(進賀使) 일행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30년 함흥부윤으로 영흥부 군기고 화재사건을 다루었다.
이때 관련자에 대한 지나친 처벌로 직첩을 박탈당하고 경기도 여흥부(驪興府)의 요간(燎干: 봉수나 관서에 불을 놓는 군역자)으로 보충되었다. 그 뒤 1434년 동지돈녕부사·전라도관찰출척사, 이듬해 중추원부사·호조참판, 1436년 형조참판을 역임하였다. 그 뒤 고신(告身)을 빼앗겼다가 1441년 환급되었고, 1460년(세조 6) 원종공신 3등에 책록되었다.
참고문헌
- 『태종실록(太宗實錄)』
- 『세종실록(世宗實錄)』
- 『세조실록(世祖實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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