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랑이라는 규수가 태수가 된 아버지를 따라 밀양에 갔다. 어느 날 그 고을 통인과 유모의 음모에 휘말려 영남루에 나갔다가 통인에게 욕을 당하게 되었다. 전력을 다하여 항거한 아랑은 끝내 통인에게 피살되고 그 시체는 강가 숲으로 던져졌다. 별안간 딸을 잃은 아버지는 태수직을 사퇴하고 서울로 돌아갔다. 그 뒤로 새로운 태수가 부임할 때마다 그날 밤중에 귀신이 나타나 신원을 호소하자, 놀란 태수들은 기절하여 죽고 말았다. 밀양 태수로 가고자 하는 자가 없자, 조정에서는 자원자를 구하여 내려 보냈다.
신임 태수가 밀양에 도착한 날 밤에 촛불을 밝히고 책을 읽고 있었는데, 갑자기 음산한 바람이 일며 방문이 열리고, 산발한 채 가슴에서 피를 흘리는 여인이 목에 칼을 꽂은 채 나타났다. 그 여인은 아랑으로, 태수에게 자신의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고 그 범인인 통인의 이름을 가르쳐 준다. 신임 태수는 이튿날 범인을 잡아 처형하였더니 그 뒤로는 신임 태수가 변을 당하는 일이 없어졌다.
손진태는 『조선민족설화의 연구』에서 이러한 계열의 설화를 ‘아랑형전설(阿娘型傳說)’이라 이름을 짓고 다각도로 살핀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이런 유형은 중국 설화에 널리 있는 것으로 중국에서는 ‘아랑(阿娘)’이 ‘해랑(解娘)’으로 나타난다고 하며, 「아랑 설화」의 원천적 문헌으로서 송나라 홍매(洪邁)의 『이견지(夷堅志)』 소재의 「해삼랑전설(解三娘傳說)」의 전문을 인용하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는 역관(驛館)이나 역정(驛亭)에서도 항상 귀신이 머무르고 있는데, 그곳에 묵는 자들이 변사하는 내용의 이야기가 많은 것에서 유추하여 우리나라의 「아랑 설화」가 중국 설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우리나라의 「아랑 설화」는 밀양을 본고장으로 지리적 배경이 고정되어 있고, 실제로 밀양에 아랑각(阿娘閣)이 있어 더욱 설화의 진실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19세기 야담집과 한시에서 등장하듯, 「아랑 설화」는 영남 문인들 사이에 회자되었는데, 남성들이 아랑 서사를 정순(貞純)의 서사로 전유할 때 『청구야담』에서는 사건을 해결하는 주체를 밀양 부사의 부인으로 바꾸며 여성의 죽음에 대한 공분의 정서를 보다 담아내기도 했다.
후대로 올수록 「아랑 설화」는 원귀 출현이라는 공포가 강조되기도 했는데, 이런 계열의 설화가 원혼설화의 성격으로 굳어져 「장화홍련전」과 같은 소설로 작품화되기도 했다. 「아랑 설화」는 현재까지 영화, 드라마, ‘밀양아리랑대축제’같은 지역 축제에서 형상화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