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민족설화의 연구」는 해방 후 1947년에 남창 손진태가 저술한 ‘조선 민족 설화’에 대한 연구서다. 이 연구서는 식민지 시기에 손진태가 저술한 각종 논문과 조선 설화 및 민담 관련 자료집의 내용을 총괄하고 망라한 것으로, 해방 후의 탈식민적 인식과 새로운 민족주의적 태도를 적극적으로 드러낸 성격의 연구서라고 할 수 있다. 손진태는 이 책에서 설화가 전승·전파되는 궤적에 초점을 두고 조선 민족 설화의 특징을 서술하면서, 이 설화 전승의 역사적 유래를 중국·북방·일본 지역 전승 설화와 불전설화들과의 상호관계 속에서 설명하려하였다.
손진태(孫晋泰, 1900~미상)는 1900년 12월 28일에 경상남도 동래의 하단에 있는 남창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호 역시 이 ‘남창’을 따른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생활 근거지(生活根據地)를 옮겨 다니며 생활했다. 그러다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아 1921년 중동학교(中東學校)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24년에는 와세다 제1고등학원을 졸업하였다. 같은 해 4월에 와세다대학 사학과에 입학하여 1927년에 졸업하였는데, 당시 일본사와 인류학을 전공하면서 지도 교수의 영향을 받아 민속학(民俗學)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가 민속자료(民俗資料)에 관심을 가진 것은 그보다 더 이른 시기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그가 대학에서 배운 것은 근대 학문으로서의 민속학 이론들과 민속학을 연구하는 방법론이었다.
와세다 대학에서 그를 지도한 것은 니시무라 신지[西村眞次]였으며, 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吉]의 제자인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의 강의를 듣기도 하였다. 1925년부터 동양문고를 드나들던 손진태는 와세다대학 졸업 후, 1930년부터 동양문고 직원으로 근무하며 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吉]가 주도하는 학술 커뮤니티에 참여하여 그들과 교류하였다. 또한 동경에 머물면서 방정환(方定煥) · 정인섭(鄭寅燮) · 마해송(馬海松) · 조재호(趙載浩) · 진장섭(秦長燮) 등의 색동회 회원들과도 교유(交遊)하였다.
1931년에는 대동사인쇄소에서 근무하였으며 1930년대에는 일본학사원의 관비(官費) 지원을 받아 조선 전역에서 민속 조사를 시행하기도 하였다. 1934년 조선으로 완전히 귀국한 후에 연희전문학교 강사가 되어 동양사를 강의하였고, 1934년 9월 이후에는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며 문명사를 강의하였다. 1937년 이후부터 1945년에 해방될 때까지 보성전문학교 도서관장으로 근무하였다. 이후 고려대학교 사범대 학장을 지내다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당시에는 문리과대 학장을 맡고 있었다. 9·28 서울 수복 직전에 숨어 있던 곳이 발각되어 납북(拉北)된 후 북한에서의 행적은 명확하지 않다. 일부 증언에 의하면 납북 후 북한에서 연금 생활을 하며 독서와 토론 등의 활동을 이어가다 1960년대 중반에 생을 마감한 것으로 추정된다.
손진태는 민속학자이자 역사학자였다. 해방 전에는 설화(說話) · 온돌 · 고인돌 등에 대한 연구를 주로 하여 민속학자로서의 정체성이 강했다면, 해방 후에는 신민족주의(新民族主義)를 내세우며 역사학에 더욱 정진하는 태도를 드러냈다. 1920년대와 1930년대 두 차례에 걸쳐 조선 민속을 조사하는 여행을 다녔으며 이때의 결과물을 토대로 다수의 논문과 여행기를 발표하였다. 1930년대에는 조선민속학회(朝鮮民俗學會)와 조선민속학 학술지(學術誌)를 발간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했는데, ‘조선민속학’의 발생 초기에는 일본 민속학자들과의 교류가 학술 활동의 주요 토대가 되었다.
저서로는 『조선고가요집(朝鮮古歌謠集)』(1929, 동경) · 『조선신가유편(朝鮮神歌遺篇)』(1930, 동경) · 『조선민담집(朝鮮民譚集)』(1930, 동경) · 『명엽지해(蓂葉志諧)』(1932, 동경) · 『조선민족설화의 연구(朝鮮民族說話의 硏究)』(1947) · 『조선민족문화의 연구(朝鮮民族文化의 硏究)』(1947) · 『조선민족사개론』(1948) · 『우리 민족의 걸어온 길』(1948) · 『국사대요(國史大要)』(1949) · 『국사강화』(1950) 등이 있다. 그밖에 신화(神話)에 나타난 고대인(古代人)의 여성관(女性觀) · 시조 · 가옥 형식 · 검줄 문화 · 화전민(火田民) · 동요(童謠) · 온돌 · 설화 · 민간 신앙(民間信仰) · 『삼국유사』 · 무속(巫俗) · 산신(山神) · 처용랑(處容郞) · 불교문화(佛敎文化) · 소도(蘇塗) · 장승 · 석전 · 고인돌 · 지게 · 「단군 신화」 등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남겼다.
손진태는 책의 서문(序文)에서 민족 설화를 ‘민족 사이에서 설화 되는 신화 · 전설(傳說) · 고담(古談) · 동화(童話) · 우화(寓話) · 소화(笑話) · 잡설(雜說) 등을 총망라(總網羅)한 개념’으로 설명하고 ‘한 사회의 집단생활 내에서 자연적으로 발생 · 생장(生長)하여 집단의 사상 · 감정 · 생활사상을 표현하게 된 것’으로 정의하였다. 그는 민족 설화를 개인적인 것이나 지배 귀족 계급적(階級的)인 것이 아니라, 집단적 · 평등적이며 민족적인 것으로 설명하고, 역사적 민족 설화와 현실적 민족 설화으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민족 설화에 대해 기록에 의해 전승(傳承)되는 것이 아니라 ‘무식 계급’이 말을 통하여 느끼는 것을 전달하는 ‘ 구비문학(口碑文學)’이라고 설명하였다.
손진태는 민족 설화를 연구하는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하고, 그 방법론(方法論)으로 인류학적 방법 · 민속학적 방법 · 사회학적 방법 · 문학적 방법 · 종교학적 방법 · 언어학적 방법 · 심리학적 방법 · 역사학적 방법 · 지리학적 방법 · 경제학적 방법 · 윤리학적 방법 · 정치학적 방법 · 법률학적 방법을 열거하였다. 이 가운데 그는 문화사적 방법을 중요한 방법론의 하나로 거론하면서, 이 방법론에 대해 ‘1개의 민족 설화가 어떻게 어느 곳에서 발생하여 어느 시대에 어떠한 까닭으로 어느 곳으로 전파된 경로를 연구하는 방법’으로 설명하였다.
그는 이 책에서 57가지 유형의 ‘설화’ 작품을 예로 들어 조선의 ‘민족 설화’가 어느 곳에서 어떤 형태로 유래하여 정착하였ᅌᅳ며 또 어디로 전파되어 나갔는지 설명하거나, ‘민족 설화’의 문화적 기원과 발생의 연원(淵源)을 추적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 조선을 대표하는 ‘민족 설화’를 구성하고 이들 작품을 중국 · 인도 · 몽고 · 일본 등지의 ‘설화’ 작품과 비교하였다.
이 책은 총 7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1장에서는 ‘중국에 전해진 조선설화’로 신라의 금추 설화(金錐說話)와 형제 투금 설화(兄弟投金說話)를 다루었다. 2장에서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민족 설화’의 예로 ‘대홍수전설(大洪水傳說) · 북두칠성과 단명소년 설화 · 광포 전설(廣浦傳說) · 의구전설(義狗傳說) 1과 2편 · 나중미부 설화(螺中美婦說話) · 청와전설(靑蛙傳說) · 아랑형 전설(阿娘型傳說) · 효자매아전설(孝子埋兒傳說) · 처첩쟁발백흑발설화(妻妾爭拔白黑髮說話) · 상주오복동전설(尙州五福洞傳說) · 열불열녀 전설(烈不烈女傳說) · 욕신금기설화(欲身禁忌說話) · 선유(仙遊)에 후가부가(朽柯斧柯) · 좌칠우칠횡산도출(左七右七橫山倒出) · 아지(兒智)에 관한 설화 · 이태조묘지전설 · 왕상득리전설(王祥得鯉傳說) · 조수설화(潮水說話) · 산상삼시여전설화(山上三屍與錢說話) · 강감찬금와훤전설(姜邯贊禁蛙喧傳說) · 산지고고탱석고(山之高高撑石故) · 미낭능언설화(米囊能言說話) · 독쟁이 구구 설화(九九說話)’를 언급하고 그 내용을 분석하였다.
3장에서는 ‘북방 민족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민족 설화’의 예로 ‘대전쟁전설 · 견묘(犬猫)의 보주탈환설화(寶珠奪還說話) · 지하국대적제치설화(地下國大賊除治說話) · 조선의 일월전설(日月傳說) · 쇠똥에 자빠진 범 · 흥부설화’를 언급하고 그 내용을 분석하였다.
4장에서는 ‘일본에 전파된 조선설화’의 예로, ‘ 사신 간의 수문답(手問答) · 청와전설 · 범보다 무서운 곶감 설화 · 삼년아부전설(三年啞婦傳說) · 조선의 일월전설 · 호토설화(虎兎說話) · 치서설화(癡壻說話) · 가자(茄子)로 방적(防賊)한 설화’를 다루고 있다.
5장에서는 ‘불전(佛典)에서 유래한 민족 설화’로 ‘ 홍수 설화(洪水 說話), 별주부설화, 기로전설(棄老傳說), 부처쟁병설화(夫妻爭餠說話), 선인습금설화(善人拾金說話), 녹(鹿) · 토(兎) · 섬(蟾) · 서(蜍)의 나이 자랑, 불식경설화(不識鏡說話), 서산대사 설화(西山大師說話)’를 다루었다.
6장에서는 ‘세계적인 분포를 드러내는 설화’로 ‘대사제치전설(大蛇除治傳說), 백조소녀전설(白鳥少女傳說), 견훤식전설(甄萱式傳說)’를 다루었다. 마지막 7장에서는 ‘기타 설화’로 ‘ 해수(海水)가 짠 이유, 면인면기 설화(面印麵器說話), 징처설화(懲妻說話), 사미설화(沙彌說話), 밉다가 곱다가 하는 처(妻), 명관치장승 설화(名官治長丞說話), 방리득보설화(放鯉得寶說話)’를 다루었다.
『조선민족설화의 연구』는 해방 후 1947년에 남창 손진태가 저술한 ‘조선 민족 설화’에 대한 연구서다. 이 연구서는 식민지 시기에 손진태가 저술한 각종 논문과 조선 설화 및 민담(民譚) 관련 자료집의 내용을 총괄하고 망라한 것으로, 해방 후의 탈식민적(脫植民的) 인식과 새로운 민족주의적(民族主義的) 태도를 적극적으로 드러낸 성격의 연구서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설화 전승과 전파의 궤적에 초점을 두고 조선 민족 설화의 핵심 레퍼토리를 정리하고, 이 설화 전승의 역사적 유래를 중국 · 북방 · 일본 지역 전승 설화와 불전설화(佛典說話)들과의 상호 관계 속에서 설명하려 하였다.
『조선민족설화의 연구』는 저자가 서문에 밝힌 대로 문화사적 방법론을 적용하여, ‘조선 민족 설화’의 근간(根幹)을 형성하고 있는 이야기 자원이 어디서 유래하여 어디로 전파되어 나갔는지를 설명하고 분석하는 데 목적을 두고 서술되었다. 이와 같은 문화사적 방법은 이론적으로 사회 진화론(社會進化論)의 시각과 방법 · 역사 지리학적 관점 · 전파론적 시각과 방법을 전유한 것으로, ‘민족 설화’의 형성 원류를 밝히고 주변 문화권의 ‘설화’들과 어떤 상호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밝히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이와 같은 손진태의 관점과 방법은 식민주의(植民主義)의 관점과 방법을 부분적으로 공유한 것으로, 사회 진화론이나 전파론이 20세기 초 이래 제국의 시각과 기획을 전유한 인류학과 민속학의 핵심 방법론이자 이론이었던 정황과 무관하지 않다. 이것은 손진태의 민속 연구가 한국 최초의 근대적 민속학의 방법과 시각을 온전히 실현하고 입증한 연구 성과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의 민속 연구가 근대적 학문 성과라면, 이 근대 학문으로서의 민속학의 실현은 일본 민속학의 영향 아래 형성되었던 조선 민속학의 자장 안에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식민지(植民地) 근대학으로서 조선 민속학 연구의 토대를 구축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한계이자 필연성(必然性)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손진태의 ‘설화’ 연구가 식민주의의 영향 아래 완전히 포섭되어 있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손진태가 근대 학문을 접한 조선인 유학생으로서 양가적(兩價的)인 면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양가적인 면모는 그가 식민주의의 그늘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만들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식민지 조선의 경계에 머물지 않으려는 새로운 도전을 하게 만들었다.
특히 이 책이 간행된 1947년은 해방 후의 시점으로, 사회정치적 맥락에서 식민주의의 흔적을 지우고 ‘탈식민(脫植民)’의 입장을 취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적 조건이 나타나는 시기였다. 손진태가 같은 시기 저술한 다른 역사서에서 ‘신민족주의’를 천명(闡明)한 것 또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해방 후 조선의 지식인에게 요구된 것은 식민지 조선의 멍에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민족 담론(談論)’ 혹은 ‘민족 문화’의 정체성을 형성하여 이를 전시하는 데 기여한다는 역사적 사명 의식이었다. 손진태는 『조선민족설화의 연구』를 통해 식민지 그늘에서 벗어난 ‘민족 설화’의 정체와 전망을 설화의 형성과 기원, 전파와 상호 간의 영향 관계에 관한 담론으로 밝혀 내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가 배우고 전유할 수 있었던 근대적인 방법과 시각은 식민주의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가 문화사적 방법론으로 천명한 전파론과 역사 지리학(歷史地理學)의 관점들이 식민주의의 토대 위에서 발생하고 성장한 것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