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주설화(人柱說話)」는 토목이나 건축 공사 과정에서 반복된 실패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을 희생양으로 바치고 결국 성공하게 되었다는 내용의 설화이다. 예부터 성 쌓기·둑 쌓기·다리 놓기 등 대규모 토목 공사나 궁궐을 짓는 등의 건축 일은 사람의 힘만으로 할 수 없는 일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살아 있는 생명, 그 중에서도 가장 가치가 높은 것으로 여겨지는 '사람'의 생명을 희생으로 바치는 풍습이 있었고, 이에 관한 이야기가 전승되기에 이른 것이다. 희생으로 선택되는 사람은 대체로 어린아이나 여성 등이었다.
「인주설화(人柱說話)」는 간혹 문헌에 기록된 이야기들도 있지만 대체로 구술 전승되는 것들이 많다. 문헌에 기록된 이야기 중에는 『읍지(邑誌)』나 『지리지(地理志)』,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의 기록을 예로 들 수 있다. 여기에는 읍성이나 진성 등을 쌓다가 성이 계속 허물어져 사람을 희생물로 바치는 제의를 치렀더니 성이 완성되었다는 내용의 기록이 남아 있다.
구술 전승되는 이야기들 중에는 성을 쌓는 일 외에도 못을 만들거나 다리를 만드는 등의 일이 실패로 돌아가는 것이 사건의 발단이 되는 경우가 있다. 이들 이야기에서는 자꾸 허물어지는 성이나 둑, 혹은 다리 때문에 지나가는 도승에게 묻거나 점을 치는데, 이에 대한 답변으로 "사람을 희생(犧牲)으로 바치라."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 말대로 따른 뒤에 무사히 공사를 마무리하게 된다. 이후 희생양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긴 마을 사람들이 희생을 위한 제사를 주기적으로 지내거나, 희생의 사건 이후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생겨 마을 사람들이 제를 지내게 되었다는 등의 이야기가 덧붙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야기가 결부된 장소의 경우 종교적 제의나 주술적 의례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사례가 많다.
「인주설화」의 서사는 마을 공동체의 위기, 혹은 긴급한 문제 해결을 요청하는 사건의 발생에서 시작된다. 잇따른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을 쌓아야 하거나 홍수나 가뭄의 피해를 막기 위해 둑을 쌓아야 하는 등의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저수지나 못을 만들거나 다리를 건설하는 등의 일이 요청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대규모 토목 및 건축 공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성이나 둑이 무너지는 등의 좌절과 실패가 반복된다. 사람들은 지나가는 도승에게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묻고 도승은 산 사람을 파묻어야 한다는 답을 내놓는다. 마을 사람들은 집단의 모의를 거쳐 희생양을 결정하고 살아 있는 아이나 처녀를 제물로 바쳐 성이나 둑을 완성한다. 그런데 성이나 둑이 완성된 후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반복되거나 죽은 희생양에 대한 죄책감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의 탄식과 후회가 지속된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희생양을 위한 의례나 제의를 시작하게 되고 이와 더불어 이야기의 전승이 시작된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유형의 「인주설화」가 있다.
①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신학리의 소바우 마을은 옛날에 마을 앞 둑이 잘 터져 피해가 많았다. 이 때문에 지나가는 도사에게 해결 방안을 물었더니, 도사가 살아 있는 아이를 파묻고 제사를 지내라고 하였다. 도사의 말을 따라 산 아이를 파묻은 후 제사를 지내고 둑을 쌓았더니 그 뒤로는 둑이 안전하게 유지되었다. 이때 희생된 아이의 이름이 '소바우'여서 마을 이름 역시 '소바우'로 불리게 되었다.
② 전라남도 장흥군 부산면 용반리 어인보(御印洑)는 예전에 보의 둑이 잘 터졌는데 도사에게 물었더니 산 사람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고 했다. 희생물을 찾던 중 마침 지나가던 거지 부자가 있어 그 아들을 돈으로 사서 제물로 파묻었더니 둑이 터지는 일이 없었다. 거지 아비가 자식을 판 돈을 가지고 가다가 유양리의 벼락바위에서 벼락을 맞아 죽었다.
③ 제주도 성산읍 수산리는 옛날에 중요한 방어의 요충지였는데 수산진성을 쌓을 무렵 성벽이 계속 허물어져 쌓을 수가 없었다. 지나가던 도사에게 물으니 처녀를 제물로 바치라 했는데 그의 말대로 했더니 성이 무너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때 제물로 바친 처녀를 마을신으로 삼아 당을 만들어 의례를 지냈는데 그 당의 이름을 ‘진안할망당’이라고 한다. 지금도 진성의 성벽 바로 옆에 있는데 아직까지 마을 사람들이 의례를 모시고 있다. 마을의 아이들이 시험을 보거나 사회적 지위 상승과 연관된 일이 있을 때 이 당에 기도를 하면 좋은 효험이 있다는 말이 전한다.
「인주설화」 유형 중에는 희생에 대한 거부와 저항이 나타난 것들도 있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사람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도승의 말을 듣고 화가 난 사람들이 “사람을 구할 수 없으니 당신이 인주가 되어라.”라고 말하고 도승을 밀어뜨려 물속에 넣어 인주로 삼기도 한다.
토목 공사와 관련된 일이 아니더라도 특별한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인신 공희(人身供犧)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에밀레종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는 종교적 주물의 대표적인 예로 종을 만들기 위해 어린 아이를 희생물로 바친다. 토목 공사와 마찬가지로 종교의 권위와 힘의 확산을 상징하는 종을 만드는 일은 다분히 주술적이고 신화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인신 공희의 의례는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부정한 힘을 방어하기 위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심청전」에서 인당수에 심청이를 바쳐 바닷길의 평안함을 기원하는 것이나 큰 지네나 굴 속에 사는 커다란 뱀에게 처녀를 제물로 바쳐 마을의 안녕을 꾀하는 것이 모두 이와 같은 부류의 의례 흔적을 보여 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인주설화」는 토목이나 건축 공사 과정에서 반복된 실패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을 희생양으로 바치고 결국 성공하게 되었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가리킨다. 예부터 성 쌓기 · 둑 쌓기 · 다리 놓기 등 대규모 토목 공사나 궁궐을 짓는 등의 건축 일은 사람의 힘만으로 할 수 없는 일로 여겨졌다. 이것은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신화적 사건이며, 대규모 자원과 인력이 투입되어 거대한 규모의 협업이 이루어져야 하는 정치적, 사회적 사건이다. 이 때문에 이와 같은 일은 실패로 귀결되는 일이 많다는 경험적 인식과 쉽게 성공할 수 없는 일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맞물려, 살아 있는 생명을 희생으로 바치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는 일이라는 인식을 담아낸 이야기가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희생(犧牲)으로 선택되는 것은 사람보다는 동물의 사례가 많지만, 이들 이야기에서는 가장 고귀한 희생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살아 있는 사람을 바치게 된다. 산 사람의 생명을 폭력으로 빼앗는 것은 그 자체로 신화적 폭력의 원형적 재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사건은 필연적으로 신성(神聖)의 에너지에 접속되거나 오염되어 초월적이고 주술적인 힘을 방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희생의 사건이 벌어진 장소는 그 자체로 성스러워질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안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와 같은 사건이 벌어진 장소에서 종교적 제의나 주술적 의례 등이 행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의례나 제의가 사라진 경우라 할지라도 관련 이야기를 연행, 전승하는 것을 통해 희생의 신화적 사건을 기억하고 지속하는 행위를 이어 나간다.
사회적인 관점에서 보면 희생으로 선택되는 것은 살아 있는 생명 중에서도 어리거나 여린 것들이다. 주로 어린아이나 여성이 선택되는데 인류학적 관점에서는 대다수 사회에서 포로, 노예, 장애인 등 특정한 차이를 가진 존재가 희생양으로 선택된다. 희생양은 폭력의 대상이 되어 죽음으로써 공동체를 정화하는데, 그가 공동체의 모든 부정적 요소를 끌어안고 공동체 바깥으로 축출되기 때문에 공동체가 정화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죽음 이후 희생양은 공동체를 정화하고 구원한 존재로 숭배의 대상이 된다. 이와 같은 사례의 전형적 예가 토템(totem)과 터부(taboo)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인 맥락에서 희생의 사건은 엄연한 폭력이며, 희생으로 선택되는 대상에 대한 시선과 대응 역시 부당한 폭력을 내포한다. 이 때문에 희생은 필연적으로 죄책감과 비난이라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다. 희생양으로 선택되는 대상은 공동체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진 존재여서도 안 되고 공동체 내부의 존재여서도 안 된다. 공동체로부터 멀리 떨어진 존재에게는 공동체의 부정적 요소를 투사할 수 없고, 공동체 내부의 존재에게는 폭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동체 내부의 존재를 향한 폭력은 이에 대한 보복을 유발하여 공동체를 무한 상호 폭력의 상황으로 몰아가 결국 공동체 해체의 위기를 초래한다. 이 때문에 공동체의 안과 밖 사이의 경계 주변부의 존재들이 희생양으로 선택되며, 희생양에 대한 폭력이 유발하는 죄책감을 심리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희생양의 죄를 만들어 낸다. 혐오를 정당화하고 폭력을 은폐하기 위한 사회적 작업들이 진행되는 것이다.
희생의 신화적 상징성이 망각된 경우라 하더라도 희생양에 대한 위무(慰撫)의 의례나 관련 이야기가 계속 전승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희생에 관한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연행, 전승되는 것은 세속화된 형태이기는 하지만 희생양을 향한 폭력을 기억하고 증언하며 반복해서 말함으로써 그의 죽음을 달래고 애도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희생의 사건은 안타깝지만 피할 수 없었던 필연적인 일로 기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