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담(神異譚)에 속하는 설화유형이다.
자료집에 따라서는 「괴물(혹은 독수리)에게 납치되어간 세 미녀」·「금돼지(혹은 미륵돼지)의 자손 최치원」 등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이 설화유형은 우리 민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 중의 하나로, 그 대체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옛날 어느 곳에 한 여자가 괴물에게 납치당했다. 여자의 부모가 재산과 딸을 현상으로 내걸고 용사를 구하자, 어떤 용사가 나타나 혼자(혹은 부하와 함께) 여자를 찾아 출발하였다.
천신만고 끝에 용사는 괴물의 거처가 지하에 있음을 알게 되고 그 곳으로 이르는 좁은 문도 발견하였다. 밧줄을 드리워 부하들을 차례로 내려보내려 했으나 모두 중도에 포기하고 말아, 드디어 용사 자신이 지하국에 이르렀다.
용사는 우물가 나무 위에 숨어 있다가 물을 길러 나온 여인의 물동이에 나뭇잎을 훑어 뿌려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용사는 여인의 도움을 받아 괴물의 집 문을 무사히 통과하였다. 여자가 용사의 힘을 시험하려고 바위를 들어보게 했으나 용사가 들지 못하자, 용사에게 ‘힘내는 물’을 먹였다.
힘을 기른 용사는 마침내 괴물을 죽이고 납치되었던 사람들을 구하여 지상으로 올려 보냈다. 그러나 부하들은 용사를 지하에 남겨둔 채 여인을 가로채서 가 버렸다. 용사는 결국 신령의 도움을 받아 지상에 오를 수 있었다. 용사는 부하들을 처벌하고 여자와 혼인하였다.
이 설화는 아마도 우리나라 설화 중에서 가장 복합적인 구성을 지닌 대표적인 이야기일 것이다. 따라서, 이 설화는 완결된 소설적인 허구성을 지니고 있어 소설로의 이행이 쉬웠으리라 생각된다. 「금원전」·「금령전」·「최치원전」 등과 같은 고전소설 중 상당수가 이 설화를 차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전등신화』의 「신양동기」나 「홍길동전」·「설인귀전」 등에서도 이 설화가 이용되고 있어, 이 설화의 국내 전승은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금원전」이나 「최치원전」은 「지하국대적퇴치설화」를 거의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한편, 「홍길동전」 역시 홍길동이 ‘율도국’을 세운 뒤, 요괴굴에서 요괴를 퇴치하고 그 요괴에게 납치되었던 여인을 아내로 삼은 부분은 똑같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금령전」에서도 주인공 해룡이 머리 아홉을 가진 괴물에게 납치당한 공주를 구출한 뒤 혼인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이상과 같이 몇몇 고전소설들의 내용에 있어 일부 유사성을 보이는 것은 똑같은 원천으로서 「지하국대적퇴치설화」를 소재로 차용했기 때문이다.
「지하국대적퇴치설화」는 우리나라 전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다. 아르네(Aarne, A.)-톰슨(Thompson, s.)에 의하면, 이 설화의 유형으로는 AT 300 「용 퇴치자」, AT 301 「곰 아들」, AT 303 「두 형제」와 같은 것이 유명한 것인데, 랑케(Ranke)에 의하면, 유형 300은 368유화, 유형 303은 770유화가 채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세 유형 중 우리나라의 자료들은 유형 301과 매우 비슷하다. 유형 301은 「납치당한 세 명의 공주」로도 알려져 있어, 명칭에서부터 우리 설화와의 관련성을 짐작하게 해 준다(우리나라의 예에서는 흔히 세 명의 원님 딸 혹은 부잣집 딸이 납치된다).
사실, 이본에 따라 조금씩 세부적인 차이점은 있으나 대체적으로 비슷하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자료들은 유형 301의 전파임이 틀림없다.
즉, 세계적인 표준형이 3공주의 납치→영웅의 등장→초인적 능력을 지닌 3명의 부하→밧줄을 타고 지하계에 도착→괴물 퇴치→공주들을 먼저 지상으로 올려 보냄→3명의 부하가 영웅을 지하국에 유기→신령 혹은 독수리의 도움으로 영웅이 지상으로 오름→부하들을 처벌하고 막내 공주와 혼인하는 순서로 진행되는데, 우리나라의 것도 이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유형 301의 역사에 대해서 어떤 학자는 「베어울프 이야기」의 전반에 나타나는 베어울프와 그레텔의 싸움이 실은 유럽에 널리 전해 오던 설화(AT 301)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하여, 적어도 1,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것이라 한다.
분포 지역은 매우 광범위하여, 유형 301이 전승되고 있는 지역만 훑어 보아도 유럽 전역(특히 발틱 제국과 러시아), 근동·인도·극동·북아프리카·미국·캐나다 등이 있다. 이 중 극동에서는 중국·몽고·한국·일본 등에 고루 분포되어 있고, 이들은 원래 몽고의 ‘부론다이’설화가 전파된 것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