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송계집』, 『송계만록』 등을 저술한 문인.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조정에서 “전 한리학관 권응인은 글을 잘하여 그에게 필적할 만한 사람이 드물다. 지금 본도에 있으니 청컨대 관찰사에게 글을 보내어 그로 하여금 역마로 달려 선위사의 행차에 끼어 좌우에서 일을 도와 급한 일을 구하는 자격으로 보냈으면 한다.”라는 의견이 나왔다. 그리고 임금이 이것을 윤허하였을 정도였다.
권응인은 송대의 시풍이 유행하던 당시의 문단에서 그는 만당(晩唐)의 시풍을 받아들여 큰 전환을 가져오게 하였다. 그는 시평에도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시에 있어 국내에서는 남명(南冥) 조식(曺植)을 당대 제일이라 하였고, 중국에서는 소동파(蘇東坡)의 시를 가장 높이 숭상하였다.
권응인의 문명은 후일 영조 즉위년인 1725년(영조 1)에 정진교(鄭震僑)가 올린 상소문에서 조선조에 걸출했던 서얼출신 문인을 열거하는 가운데에 박지화(朴枝華) · 어숙권(魚叔權) · 조신(曺伸) · 이달(李達) · 정화(鄭和) · 임기(林芑) · 양대박(梁大樸) · 김근공(金謹恭) · 송익필(宋翼弼) 형제 · 이산겸(李山謙) · 홍계남(洪季男) · 유극량(劉克良) · 권정길(權井吉) 등과 함께 거론될 정도였다.
『어우야담(於于野談)』 · 『기문총화(記聞叢話)』 · 『자해필담(紫海筆談)』 등에 그와 청천(聽天) 심수경(沈守慶)에 관한 일화가 수록되어 있다.
권응인의 문집으로는 『송계집』이 있으며, 그밖에 저서로는 1588년(선조 21)경에 지은 『송계만록』 상하 2권이 있다. 『송계만록』의 상권에는 시화, 하권에는 시화 및 잡기 · 설화 등이 수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 『명종실록(明宗實錄)』
- 『송계만록(松溪漫錄)』
- 『송계집(松溪集)』
- 『영조실록(英祖實錄)』
주석
-
주1
: 선위사 활동 보조 : 『명종실록』 28권, 1562년(명종 17) 11월 6일. "권응인이 사장에 능하므로 선위사 일행을 따라가서 돕게 하다"
-
주2
: 권응인 저술 : 『송계집(松溪集)』(한국국학진흥원)
-
주3
: 권응인 저술 : 『송계만록(松溪漫錄)』(장서각 K3-622)
-
주4
: 서얼 출신은 벼슬에 재한을 두는 것.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