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시대 수원판관, 영천군수, 첨지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를 따라 안성에서 의병을 일으켜 인근의 여러 고을로 전전하며 전공을 세워 첨지(僉知)로 승진되었다.
그가 다른 진에 연락차 본진을 떠난 사이 아버지가 왜군을 공격하다가 전사하자, 돌아와 아버지를 대신하여 의병진의 선두에 서서 높은 곳에 성을 쌓고 적정을 정탐하면서 도처에서 유격전도 펼쳤다.
이듬해 다시 군사를 거느리고 전라·경상도 지역으로 진출하여 이빈(李蘋)·선거이(宣居怡)·송대빈(宋大斌) 등과 함께 운봉·남원·진주·구례·경주 등지로 전전하며 전공을 세웠다. 그 뒤 1596년에는 이몽학(李夢鶴)의 반란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난중잡록(亂中雜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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