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현(朴命賢)으로 쓰기도 하였다. 본관은 죽산(竹山).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 박원형(朴元亨)의 후손이다.
무과에 합격하여 무장이 되었다. 1596년(선조 29) 임진왜란 중 이몽학(李夢學)이 충청도 홍산에서 반란을 일으켜 여러 고을을 함락하고 홍성으로 진격하자, 그 근처에서 군사활동을 벌이다가 병력을 거느리고 홍주성으로 들어가 목사 홍가신(洪可臣)과 협력하고 성 밖의 군사들과 연락하여 내외협공의 태세를 취하였다.
이몽학이 포위망을 뚫고 달아나자 무장 임득의(林得義)와 함께 청양까지 추격하여 반란을 평정하였다. 이듬해 정유재란 때 토포사·충청도방어사·전라도병마절도사 등을 지내면서 호서·호남 일대에서 전공을 세웠다.
1605년 이몽학의 반란을 평정한 공으로 홍가신·임득의 등과 함께 청난공신(淸難功臣) 2등에 녹훈되고, 연창군(延昌君)에 봉하여졌으며 위계는 가선대부에 이르렀다.
1608년 선조가 죽자 무장 고언백(高彦伯)과 함께 임해군(臨海君)을 추대하려다가 잡혀 문초를 받던 중 물고(物故: 사회적으로 이름난 사람이 죽음)되었고, 공신녹권에도 삭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