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전기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자 시인으로 시문집 『청계집』을 남긴 문인.
가계 및 인적 사항
주요 활동
집안이 부유한 편이었지만, 마을 사람들과 교류할 때에는 오히려 부유한 사람들과 거리를 두었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를 좋아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 동래부(東萊府)가 함락되자 직접 격문을 작성하여 의병을 모집하였다. 고경명(高敬命)이 의병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서신을 보내 담양(潭陽)에서 만나 합류하기로 약속하였다. 여러 고을의 선비들과 무예에 익숙한 100여 명이 의병에 합류하자 두 아들과 가동(家僮) 50명을 포함해 부대를 구성하였다. 전투에 필요한 무기와 군량 등을 모두 자신의 사재로 충당하였다.
담양에서 고경명과 합류한 뒤, 그를 맹주로 추대해서 대장의 역할을 맡도록 하였다. 부대를 출발시켜 전주로 이동하면서 의병을 계속 모집하였는데, 그 수가 2,000여 명에 이르렀다. 이동 중 운암(雲巖)에서 일본군을 만나 격파하는 전공을 세웠다. 하지만 임진왜란 발발 이후 의병을 모으기 위해 더위와 굶주림을 참아가며 고생하다가 병을 얻게 되었다. 거동이 불편해지고 쉽게 치료가 되지 않아 수레에 실려 돌아왔으나, 결국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정조실록(正祖實錄)』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청계집(淸溪集)』
논문
- 강정화, 「청계 양대박의 지리산 읽기, 「두류산기행록」」(『동방한문학』 47, 동방한문학회, 2011)
- 김희태, 「청계 양대박의 행적과 곡성 청계동」(『향토문화』 30, 향토문화개발협의회, 2010)
- 양태순, 「청계 양대박의 생애와 한시」(『한국한시작가연구』 6, 한국한시학회, 2001)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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