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일제강점기와 해방 공간, 민속과 민족사를 탐구한 민속 · 역사학자, 교육 관료.
인적사항
주요활동
또한 1930년대에는 조선민속학회, 진단학회와 같은 학술 단체의 설립과 운영에도 힘을 쏟는다. 특히 후자의 경우 귀국 직후의 창립 총회에서 손진태는 김태준, 이병도, 이윤재, 이희승, 조윤재와 함께 ‘상무위원’으로 선임되어 줄곧 회무(會務)를 관장한다. 광복 후에는 일제강점기에 발표한 조선민속학의 성과들을 매만져 단행본을 상재한다. 그리고 신민족주의 사관을 주창하며 우리 민족사에 관한 연구 성과들을 집성하고 역사 교과서를 저술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문교부 편수국장과 차관을 겸직하며 신민족주의 교육 정책의 입안과 실행을 주도한다.
학문과 저술 및 사상
이 중 『조선민족문화의 연구』는 일제강점기에 발표한 18편의 주요 논문을 수정하고 첨삭한 것으로, 신민족주의의 세례로 거듭난 ‘민족문화학’의 성과로 주목된다. 손진태는 『조선민족문화의 연구』 서문에서 자신이 일제강점기에 추구한 민속학이란 학문의 명칭을 ‘민족문화학’으로 바꿔 부르고 싶다고 말한다. 또 이 책에 수록한 주요한 18편의 저본(底本)을 동학들에게 보지 말라고 당부한다. 자신의 방법론에 상당한 변화가 있어 과거의 논문은 전면적으로 일단 폐기하려는 의도라고 그 까닭을 밝히기도 한다.
후자의 대표적 성과는 『조선민족사개론(상)』(1948)과 『국사대요』(1949)이다. 제목과 같이 우리 민족사를 개설하고 국사의 대강령을 논술한 내용이다.
손진태를 둘러싼 사상적 쟁점은 위의 두 개설서에서 강조된 신민족주의의 정치성으로 수렴되는데 그 요점은 다음의 두 가지이다. 즉 반(反)식민주의 사관으로서의 신민족주의와 해방 공간의 중도적 정치 이념으로서 신민족주의, 이 양자의 당부(當否)가 핵심적인 논점이다. 종래의 손진태 연구에서 일반화한 이 두 가지 통설에서 실증적인 고찰로 여러 이견(異見)이 제기된 바 있다. 가령 1920, 1930년대에 펼쳐진 손진태의 민족문화론을 일제 만선사학(滿鮮史學)과의 관계 속에서 재고함으로써 타율 사관을 추수해 버린 그의 부끄러운 과거가 광복 후 신민족주의에 기초한 ‘민족문화학’에서 어찌 조만동조론(朝滿同朝論)으로 소거되는지를 천착한 성과, 그리고 신민족주의를 좌우합작 계열이 아닌 정통 우파나 극우적 정치 이데올로기로 자리매김한 성과 등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 한국역사민속학회 편, 『남창 손진태의 역사민속학연구』(민속원, 2003)
논문
- 남근우, 「손진태의 ‘조선민속학’과 ‘신민족주의’ 재론」(『문화권력-제국과 포스트제국의 연속과 비연속』, 소화, 2019)
- 홍선이, 「손진태 신민족주의론의 ‘좌우합작적’·‘민주주의적’ 성격에 대한 재검토」(『역사교육연구』 32, 한국역사교육학회, 2018)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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