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민속 ()

민속·인류
문헌
일제강점기, 조선민속학회의 기관지로 통권 3호를 내고 종간된 학술지.
문헌/도서
간행 시기
1933년|1934년|1940년
편자
조선민속학회
책수
3
출판사
대화상회 인쇄소|금광당 인쇄소|대동출판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조선민속』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조선민속학회의 기관지로 통권 3호를 내고 종간된 학술지이다. 학회 창립 이듬해인 1933년 1월에 창간호, 1934년 5월에 2호, 그리고 1940년 10월에 3호가 각각 발행되었다. 학회 창립과 기관지 창간 및 기고(寄稿)를 주도한 이는 송석하와 손진태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속학 전문 학회지로 학술 논문과 자료 보고의 이원 체계로 구성되었다.

정의
일제강점기, 조선민속학회의 기관지로 통권 3호를 내고 종간된 학술지.
필자

『조선민속』은 원칙적으로 기고하는 데에 언어상의 제한은 없었지만 그 자격은 회원으로 국한했다. 1~3호에 실린 학술 논문과 자료 보고는 총 25편이다. 손진태송석하는 논문과 자료를 합해 5편씩, 그리고 아키바 다카시[秋葉隆]는 논문만 3편을 기고했다. 이 세 사람의 글이 이 학회지 전체의 절반 남짓 차지해 그들이 주요 필자였음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정인섭을 비롯한 김문경, 연영화, 한기승, 백낙준, 김두헌, 임석재, 야나기타 구니오[柳田國男], 아유카이 후사노신[鮎貝房之進], 아카마쓰 지조[赤松智城],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 등이 필자로 참가했다.

구성과 내용

창간호를 펼치면 손진태의 「생고(栍考)」를 필두로 아키바 다카시의 「거제도의 입간 민속[巨濟島の立竿民俗]」, 송석하의 「오광대소고(五廣大小考)」가 차례대로 나온다. 이 학술 논문들 다음에 자료란이 구획되어 우선 조선의 민속 사상을 자료화한 2편의 글이 등장한다. 정인섭의 「진주오광대탈노름」과 손진태가 보고한 평안북도 「강계의 정월 세사(歲事)」이다. 이어 송석하가 정리한 「(조선민속학 연구에 필요한) 외국어 참고 문헌 목록[The catalogue of the Books in Foreign Language(For the reference on the study of Korean Folk-lore)]」, 그리고 「지난 1년간 국내외 잡지에 실린 조선민속학 관계 문헌[去年度各雜誌揭載朝鮮民俗學關係文獻]」 정보가 제시된다.

이러한, 학술 논문과 자료 보고라는 이원적 구성 체계는 2호에서도 유지된다. 다만 학술 논문으로 유일하게 아키바 다카시의 「마을굿의 이중조직[村祭の二重組織]」이 권두에 실리고, 자료란에는 손진태의 「강계 채삼자의 습속(江界採蔘者의習俗)」을 비롯한 김문경의 「출산에 관한 민속(경성)[出産に關する民俗(京城)]」, 송석하의 「동래야류대사(東萊野遊臺詞)」 등, 총 6편의 조선 민속 자료와 2편의 조선 민속학 관련 문헌 정보가 실렸다. 창간호에 비해 자료 보고가 한층 더 강화된 모습이다.

다음, 3호의 경우 1 · 2호와는 조금 다른 구성과, 외양의 변화가 몇 가지 보인다. 첫째, 이마무라 도모[今村鞆]의 고희 기념으로 특집의 체제를 취한다. 그래서인지 「민속학과 소생[民俗學と小生]」이란 그의 에세이가 3호의 권두를 장식한다. 이어 일본 민속학계의 대부인 야나기타 구니오의 「학문과 민족 결합[學問と民族結合]」을 비롯한 10편의 글이 실리는데, 전체적으로 학술 논문과 자료 보고의 경계와 구획이 불분명하다. 또 말미의 조선 민속학에 관련된 문헌 정보를 갈음해, 이마무라 도모의 저작 목록이 제시되고 서평란이 신설된다. 둘째, 1 · 2호에서는 조선어와 일본어, 영어가 혼용되는데 3호의 경우 모든 글들이 일본어로 작성된다. 셋째, 1 · 2호의 저작자 겸 발행자는 송석하인데, 3호에서는 아키바 다카시로 바뀌었다.

의의 및 평가

『조선민속』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행된 민속학 전문 학술지이다. 피식민지 상황에서 토박이가 중심이 되어 민속학 관련 학회를 설립하고 학회지를 발행한 경우가 흔치 않다는 점에서 민속학사상(民俗學史上)의 의의가 크다. 평가에 얽힌 쟁점은 주로 3호의 외양 변화를 둘러싸고 펼쳐졌다. 앞에서 언급한 몇 가지 변화를 『조선민속』의 일제화와 주도권 교체로 읽을지, 아니면 ‘조선 민속학계의 장로’ 이마무라 도모의 고희를 기념하려는 일과성의 이벤트로 봐야 할지, 논자들 사이에 의견이 갈리고 있다.

참고문헌

논문

남근우, 「‘조선민속학회’ 재론」(『실천민속학연구』 34, 실천민속학회, 2019)
전경수, 「조선민속학회와 『조선민속』의 식민지와 은항책: 식민지혼종론의 가능성」(『민속학연구』 33, 국립민속박물관, 2013)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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