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석하 ()

송석하
송석하
민속·인류
인물
일제강점기 때, 조선민속학회를 창립하였으며, 해방 후에 서울대학교에 인류학과를 개설하고, 국립민족박물관을 설립한 민속학자.
이칭
석남(石南)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4년(고종 41)
사망 연도
1948년
출생지
경상남도 울주
정의
일제강점기 때, 조선민속학회를 창립하였으며, 해방 후에 서울대학교에 인류학과를 개설하고, 국립민족박물관을 설립한 민속학자.
개설

호는 석남(石南). 경상남도 울주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고종의 시종부경(侍從副卿)을 지낸 태관(台觀)의 장남이다. 1922년 부산 제2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상과대학에 유학하였다가,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귀국하였고, 그 뒤부터 민속에 관심을 가지고 현지조사에 나서기 시작하였다.

1932년에는 그가 중심이 되어 손진태(孫晋泰)·정인섭(鄭寅燮) 등과 함께 조선민속학회를 창립하고, 종로의 계동 72번지의 자택에 사무실을 두고 사재를 기울여 민속학의 동인연구지 ≪조선민속≫을 발행하였다.

1934년 이병도(李丙燾)·김두헌(金斗憲)·손진태·이병기(李秉岐)·조윤제(趙潤濟) 등과 함께 진단학회(震檀學會) 창설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이 학회의 발전에 공헌하였다.

1945년에는 조선산악회를 창설하여 현대 등산의 선도자가 되었다. 광복 후에는 한미문화협력에 참여하는 한편, 미군정청의 문정관으로 와 있던 인류학자 크네즈(Knez, E.I.)의 도움을 얻고 자신이 수집한 많은 민속자료를 토대로 하여 국립민족박물관을 1946년에 개관하였다.

또한 서울대학에 인류학과를 설치하고 강의를 담당하였으며(1946, 47년), 국립민족박물관의 영문 명칭을 ‘인류학박물관(Museum of Anthropology)’으로 썼고, 1946년에 발족했던 조선인류학회의 사무실을 민족박물관 내에 마련하는 등 민속학을 더 넓게 인류학으로 전환시켜나가는 노력을 하였으나, 병약해서 뜻을 다 펴지 못하고 일찍 별세하였다. 조선민속학회장·진단학회장·조선산악회장·한미문화협회장·서울대학교 강사·민족박물관장 등을 지냈다.

민속학이 한 나라에서 독립된 학문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첫째로 인류학과 더불어 민속학의 특징의 하나인 현지조사 연구들이 행해져야 하고, 둘째로 민속박물관이 있어야 하고, 셋째로 학회의 조직과 활동이 있어야 하고, 넷째로 학회지의 간행이 있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 체계적인 개설서나 사전까지 갖추어지면 일단 자리가 잡힌 것이라 하겠으나, 송석하는 우선 위의 네 가지 일을 해내는 데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사람이다. 그는 많은 민속품을 수집하였는데, 특히 가면을 많이 수집하였으며, 만년에는 서지의 수집에도 힘을 기울였다.

그가 소장하였던 ≪삼국유사≫ 권1은 최남선(崔南善)이 1943년에 펴낸 ≪삼국유사≫의 대본이었고, 친사본(親寫本)으로 추정되는 ≪매월당시고 梅月堂詩藁≫ 등 귀한 책이 많았다. 그의 사망 후 장서들은 간송미술관에 수합되었다. 그는 전형필(全瑩弼)과 더불어 많은 돈을 뜻 있게 쓴 동시에 특히 민속학에 크게 공헌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학문에 몰두하였던 선비이기보다는 민속문화의 보존과 보급, 학술단체에의 기여 등 문화운동에 더욱 노력과 자질을 발휘한 사람이다.

조선일보사와 협력하여 전국의 농악놀이를 중앙에서 경연시켰고, 봉산탈춤을 7월 백중에 놀게 하는 한편, 방송국을 동원시켜 이를 전국에 실황을 중계하게 한다.

스웨덴의 동물학자 베르그만(Bergman)이 백두산으로 동물생태연구차 가는 것을 사리원으로 안내하여 우리의 생활을 필름에 담아 유럽에 소개시키도록 하였다.

그 필름은 1970년 임석재(任晳宰)의 주선으로 복사되어 봉산탈춤의 원모습을 찾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와 같은 학문적 경향은 여동생인 여혜(如惠)와 그의 남편인 민속학자 양재연(梁在淵)이 정리해낸 그의 유고집인 ≪한국민속고≫에도 나타난다.

여기에는 ≪동아일보≫를 비롯한 신문에 실렸던 11편의 글과, ≪조광≫ 등의 잡지에 실렸던 22편의 글이 모여 있다. 여기에 실린 글들은 그가 29세부터 39세 사이의 11년간에 걸쳐 쓴 글들로서, 민속전반 특히 탈춤 등의 연희에 관련된 부문에 집중되어 있다.

그의 유고집 ≪한국민속고≫ 외에 그가 남긴 민속사진들을 담은 도록(圖錄:그림으로 엮은 목록)이 1975년 한국민속박물관에서 출판되었다. 1996년 정부로부터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한국민속고』(송석하, 일신사, 1960)
『민속사진특별전도록-석남민속유고(石南民俗遺稿)-』(한국민속박물관, 1975)
「굴절(屈折)과 파행(跛行)의 한국인류학백년」(김경수, 『한국학보』 86집∼90집, 一志社, 1997∼1998)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장주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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