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학회 ()

진단학보(제1권)
진단학보(제1권)
근대사
단체
1934년 한국 및 인근지역 문화의 연구를 위해 설립된 학술단체.
정의
1934년 한국 및 인근지역 문화의 연구를 위해 설립된 학술단체.
개설

1934년 한국인 학자들이 조선총독부 또는 일본인 학자들이 주도하는 관변적 연구풍토에서 벗어나 한국 및 인근지역의 문화를 한국인의 주체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연구풍토를 구축하기 위해 만든 학회로서, 이들 중 일부는 일제의 식민사관과 관변적 학풍을 탈피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으나, 일제강점기는 물론 해방 이후 현재까지 대학 강단을 중심으로 넓은 인맥을 유지하고 그 학술적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설립목적

일제강점기 하에서 한국인 스스로 한국문화의 개척 · 발전 ·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는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연원 및 변천

1934년 5월 7일 창립 당시 한국문화에 대한 연구의 주도권은 일본인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연구성과의 대부분은 일본인에 의해 일본어로 발표되었다. 연구자료도 대부분 일본인들에 의해 독점되었다. 또한 연구의 많은 경우가 식민사관에 따라 기술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러한 현실에서 한국인 학자들의 민족적 자긍심은 찾기 어려웠다. 그리하여 한국문화의 개척 · 발전 ·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는 취지에서 일단의 학자들이 이 학회의 창립을 결의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발기인으로는 이병도(李丙燾)를 비롯해 고유섭(高裕燮) · 김두헌(金斗憲) · 김상기(金庠基) · 김윤경(金允經) · 김태준(金台俊) · 김효경(金孝敬) · 이병기(李秉岐) · 이상백(李相佰) · 이선근(李瑄根) · 이윤재(李允宰) · 이은상(李殷相) · 이재욱(李在郁) · 이희승(李熙昇) · 문일평(文一平) · 박문규(朴文圭) · 백낙준(白樂濬) · 손진태(孫晋泰) · 송석하(宋錫夏) · 신석호(申奭鎬) · 우호익(禹浩翊) · 조윤제(趙潤濟) · 최현배(崔鉉培) · 홍순혁(洪淳赫) 등이 있었다. 이 가운데 이병도 · 이윤재 · 이희승 · 손진태 · 조윤제 등이 위원으로 뽑혀서 실무를 맡게 되었다.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朝鮮語學會事件)으로 회원인 이윤재 · 이희승 · 이병기 등이 일본경찰에 붙잡혀 활동이 중단되었다.

해방 이후 학회는 학보 발간 등 활동을 재개해 1945년 8월 31일 사단법인으로서 창립총회를 가지고 체제를 재편성하였다. 1972년 기구를 개편하고 회칙을 수정하였다. 그 결과 평의원회가 설치되고 간사진이 구성되었다. 평의원회는 학회의 중요한 문제를 토의해 결정하였고 집행은 대표간사가 중심이 된 간사진의 할 몫으로 남겨졌다.

기능과 역할

창립총회는 10개조의 회칙을 통과시켰는데 여기에는 학회의 목적과 활동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즉 한국은 물론이고 그 인근지역의 문화에 대해서까지 관심의 영역에 두어 연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1년에 4회 학보를 발간하고 수시로 강연회 · 간담회 및 그 밖의 필요한 사업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그 결과 정기학술지『진단학보(震壇學報)』를 발간하게 되었다. 민족문화의 탐구 내지 수호를 기치로 하여 출발한 이 학회는 사회 각계각층의 적지 않은 호응과 성원을 받았다.

1945년 해방 이후 『진단학보』의 발간이 재개되었고, 학회 주관으로 『한국사(韓國史)』 7권을 출판하였다. 현재 학회의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연 2회(6월, 12월) 학보를 발간하는 일이다. 『진단학보』는 2009년 6월 현재 107호까지 간행되었다. 뿐만 아니라 학회는 연 2회에 걸쳐 한국고전연구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있다. 2005년 5월 현재 33회 걸쳐 모임을 가졌다. 한국고전의 가치를 새롭게 평가해 민족문화의 전통을 보다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뜻에서 출발한 심포지엄의 개최는 관계 분야의 학자들에게 연구발표와 토론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한편, 학회는 두계학술상운영위원회(斗溪學術賞運營委員會)를 설치하고, 한국과 인접 지역의 인문 · 사회과학에 관한 역사적 연구로서 지난 2년 안에 발표된 논저를 대상으로 수상자를 결정해 상장과 연구보조금을 수여하여, 2005년 현재 24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어 학회는 적지 않은 변화가 발생하였다. 이병도 · 이희승 · 김재원 · 이숭녕 · 조명기 등 1세대 원로 회원들이 타계하였다. 또한 학회 운영도 종래 대표간사 중심에서 회장 중심으로 바뀌었다. 간사진은 이사진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새로운 세대의 학자들이 회장과 이사의 중임을 맡게 되었다. 평의원 회의에도 신진학자들을 대거 선임해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었다.

현황

2010년 현재 회장은 김두진 교수(국민대)이며, 회원은 475명이다. 정기학술지인 『진단학보』를 매회 800부를 발간하여 우리나라를 포함 4개국에 보급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일제강점하에서 민족주의계열의 한국인 한국학 연구자들이 자국문화를 연구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하였고, 대체로 이 모임에 참여한 인물들이 해방이후 대학강단을 지도함으로써 한국학계에 미친 영향이 적지 않았다.

참고문헌

『진단학보60년지(震檀學會六十年誌)·1934∼1994·』(진단학회, 1994)
『진단학보(震檀學報)』1∼85(진단학회, 1934∼1998)
진단학회(http://www.chintan.or.kr)
관련 미디어 (1)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