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34년 한국 및 인근지역 문화의 연구를 위해 설립된 학술단체.
개설
설립목적
연원 및 변천
이러한 현실에서 한국인 학자들의 민족적 자긍심은 찾기 어려웠다. 그리하여 한국문화의 개척 · 발전 ·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는 취지에서 일단의 학자들이 이 학회의 창립을 결의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발기인으로는 이병도(李丙燾)를 비롯해 고유섭(高裕燮) · 김두헌(金斗憲) · 김상기(金庠基) · 김윤경(金允經) · 김태준(金台俊) · 김효경(金孝敬) · 이병기(李秉岐) · 이상백(李相佰) · 이선근(李瑄根) · 이윤재(李允宰) · 이은상(李殷相) · 이재욱(李在郁) · 이희승(李熙昇) · 문일평(文一平) · 박문규(朴文圭) · 백낙준(白樂濬) · 손진태(孫晋泰) · 송석하(宋錫夏) · 신석호(申奭鎬) · 우호익(禹浩翊) · 조윤제(趙潤濟) · 최현배(崔鉉培) · 홍순혁(洪淳赫) 등이 있었다. 이 가운데 이병도 · 이윤재 · 이희승 · 손진태 · 조윤제 등이 위원으로 뽑혀서 실무를 맡게 되었다.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朝鮮語學會事件)으로 회원인 이윤재 · 이희승 · 이병기 등이 일본경찰에 붙잡혀 활동이 중단되었다.
해방 이후 학회는 학보 발간 등 활동을 재개해 1945년 8월 31일 사단법인으로서 창립총회를 가지고 체제를 재편성하였다. 1972년 기구를 개편하고 회칙을 수정하였다. 그 결과 평의원회가 설치되고 간사진이 구성되었다. 평의원회는 학회의 중요한 문제를 토의해 결정하였고 집행은 대표간사가 중심이 된 간사진의 할 몫으로 남겨졌다.
기능과 역할
1945년 해방 이후 『진단학보』의 발간이 재개되었고, 학회 주관으로 『한국사(韓國史)』 7권을 출판하였다. 현재 학회의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연 2회(6월, 12월) 학보를 발간하는 일이다. 『진단학보』는 2009년 6월 현재 107호까지 간행되었다. 뿐만 아니라 학회는 연 2회에 걸쳐 한국고전연구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있다. 2005년 5월 현재 33회 걸쳐 모임을 가졌다. 한국고전의 가치를 새롭게 평가해 민족문화의 전통을 보다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뜻에서 출발한 심포지엄의 개최는 관계 분야의 학자들에게 연구발표와 토론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한편, 학회는 두계학술상운영위원회(斗溪學術賞運營委員會)를 설치하고, 한국과 인접 지역의 인문 · 사회과학에 관한 역사적 연구로서 지난 2년 안에 발표된 논저를 대상으로 수상자를 결정해 상장과 연구보조금을 수여하여, 2005년 현재 24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어 학회는 적지 않은 변화가 발생하였다. 이병도 · 이희승 · 김재원 · 이숭녕 · 조명기 등 1세대 원로 회원들이 타계하였다. 또한 학회 운영도 종래 대표간사 중심에서 회장 중심으로 바뀌었다. 간사진은 이사진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새로운 세대의 학자들이 회장과 이사의 중임을 맡게 되었다. 평의원 회의에도 신진학자들을 대거 선임해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었다.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진단학보60년지(震檀學會六十年誌)·1934∼1994·』(진단학회, 1994)
- 『진단학보(震檀學報)』1∼85(진단학회, 1934∼1998)
- 진단학회(http://www.chinta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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