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족주의사학 ()

안재홍
안재홍
근대사
개념
해방 이후 민족주의사학의 역할 변화에 따라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한국 역사학계의 학문사조.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신민족주의사학은 해방 이후 민족주의사학의 역할 변화에 따라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한국 역사학계의 학문사조이다. 민족주의사학이 일본의 탄압으로 침체되면서 1940년대 안재홍·손진태·이인영·조윤제 등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였다. 안재홍이 『신민족주의와 신민주주의』라는 책을 내면서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국수적 민족주의와는 달리 민족의 초계급적 측면과 보편주의적 해석에 입각한 역사 인식을 기초로 한다. 계급과 민족의 문제를 직접 역사 속에서 다루면서 민족의 역사를 보편적이고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접근하여 민족주의사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다.

정의
해방 이후 민족주의사학의 역할 변화에 따라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한국 역사학계의 학문사조.
개설

이 부류에 속하는 학자로는 안재홍(安在鴻) · 손진태(孫晉泰) · 이인영(李仁榮) · 조윤제(趙潤濟)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민족주의사학이 일제의 탄압으로 침체되면서 1940년대부터 새로운 방향 모색을 시도했으며, 해방 직후 본격적으로 역사학계에 자리를 잡았다.

연원 및 변천

신민족주의라는 용어는 1945년 안재홍이 『신민족주의(新民族主義)와 신민주주의(新民主主義)』라는 책을 내면서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안재홍의 신민족주의 정치사상은 이미 1920∼1930년대부터 구상되었던 것으로, 해방 후 구체화되었다. 안재홍은 권리와 봉사의 균등을 조건으로 삼는 신민주주의의 토대 위에 널리 인류와 공존한다는 만민공생(萬民共生)에 입각한 민족주의를 주장해 국수적 민족주의에서 탈피하였다.

안재홍의 구상을 역사학 방면에 구체적으로 적용해 신민족주의사학으로 이론화시킨 이는 손진태였다. 손진태는 일제시기에 민속학 연구를 통해 민중을 발견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해방 후에는 『조선민족사개론(朝鮮民族史槪論)』 · 『국사대요(國史大要)』 등의 책을 쓰면서 신민족주의 역사학을 정립하였다.

손진태는 대내적으로는 계급투쟁이 일소되고 친화와 단결이 이루어진 평등한 민주국가를, 대외적으로는 국제간 친선에 기여하는 민족 자주국가를 건설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를 통해 민족 전체의 균등한 행복과 민족 간 친선을 이룩하는 것이 신민족주의의 과제라고 규정하였다.

그리하여 한국의 역사에서 보인 민족투쟁 · 계급투쟁 · 정치문화 등을 민족적 입지에서 구명하고자 하였다. 또한, 역사연구를 통해 민족사의 나아갈 방향과 세계 민족 친선의 참다운 길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이인영도 역시 신민족주의 이론을 국제관계 연구에 응용해 한국사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인영은 대외관계를 연구하면서 우리 민족의 현실에 자극을 받아 새로운 과학적 학문을 모색하였다. 해방 후에는 여러 사론과 『국사요론(國史要論)』을 통해 신민족주의사학의 기반을 다졌다.

이인영은 우리 민족이 유지되어 온 역사적 현실을 파악하는 것이 역사학에서 중요하다고 하였다. 이를 위해서 역사를 서술하는 사람은 철저한 현대의식(現代意識)과 민족적 세계관을 체득해야 한다고 하였다. 새로운 역사학의 과제는 현실적 · 민족적 입장과 세계사적 관점에서 역사적 현실에 일관하는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이라고 하였다.

한편, 조윤제는 국문학을 해석하면서 신민족주의를 받아들였다. 그 외 신진학자로 김성칠(金聖七)과 오장환(吳璋煥)이 문화주의 역사학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국수적이고 침략적인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새로운 민족문화의 형성과 세계 문화 건설을 주장해 신민족주의사학의 성향을 보였다.

신민족주의사학은 1920∼1930년대의 국수적 민족주의와는 달리 민족의 초계급적 측면과 보편주의적 해석에 입각한 역사 인식을 기초로, 민족의 형성과 발전을 역사 서술의 중심 개념으로 삼았다. 그리고 민족사를 서술할 때에는 민중의 문제와 세계사와의 관련성을 중시하였다.

그런데 한국전쟁 당시 안재홍 · 손진태 · 이인영 등이 납북됨에 따라 이 역사학 계열의 맥이 끊어지고 말았다. 남한에서 신민족주의사학의 유풍은 해방 직후 손진태 · 이인영의 지도를 받았던 학자들에 의해 일부 간직되었다.

의의와 평가

신민족주의사학은 문헌고증을 위주로 한 실증사학에서 벗어나 뚜렷한 이념이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지는 못하였다. 또한, 신민족주의사학은 민족주의의 관념성과 도덕적 해석에 기초함으로써 역사 발전에 대한 이해가 없어 사관으로는 구조적인 취약성이 있는 것으로 비판받았다. 문화나 외교 관계를 중심으로 한 세계사와의 관련성 주장이 식민사학에 대한 불철저한 비판으로 해석되기도 하였다. 게다가 해방공간의 이데올로기 대립 속에서 계급 간 갈등 해소와 민족의 화합만을 강조해 도덕적 이상론에 그치는 등 한계를 보였다.

그러나 신민족주의사학은 계급과 민족의 문제를 직접 역사 속에서 다루면서 민족의 역사를 보편적이고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접근하여 민족주의사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다.

참고문헌

『현대한국사학사(現代韓國史學史)』(조동걸, 나남, 1998)
『한국민족주의역사학(韓國民族主義歷史學)』(한영우, 일주각, 1994)
『한국고대사론(韓國古代史論)의 신조류(新潮流)』(김정배, 고대출판부, 1980)
『한국사학(韓國史學)의 방향(方向)』(이기백, 일주각, 1978)
「신민족주의사관(新民族主義史觀)」(김정배, 『문학(文學)과 지성(知性)』, 1979년 봄호)
「신민족주의사관(新民族主義史觀)과 식민주의사관(植民主義史觀)」(이기백, 『문학(文學)과 지성(知性)』 1973년 가을호)
「신민족주의사관론(新民族主義史觀論)」(이기백, 『문학(文學)과 지성(知性)』, 1972 가을호)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박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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