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국장도감제조, 박문국당상,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883년 독판교섭통상사무(督辦交涉通商事務)가 되어 전권대사로서 조영(朝英) 및 조독수호조약(朝獨修好條約)을 조인하였다. 또한, 그 해 1월 일본과 부산구설해저전선조관(釜山口設海底電線條款)을 체결하였고, 6월 조일통상장정(朝日通商章程) 및 해관세칙(海關細則)·일본인어채범죄조규(日本人漁採犯罪條規)·조선국간행리정약조(朝鮮國間行里程約條) 등을 조인하였다. 그리고 8월 인천일본조계조약을 체결하였다.
1872년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개화주의자인 박규수(朴珪壽) 등과 같이 서양의 기술 도입과 개국통상의 유용성을 강조하였다. 1882년의 임오군란 때 변장 도주한 명성황후(明成皇后)의 장례를 치를 때 이회정(李會正)·정범조(鄭範朝)와 함께 국장도감제조(國葬都監提調)로 임명되기도 하였다.
박문국당상(博文局堂上)이 되어 박영효(朴泳孝)·유길준(兪吉濬)·김윤식(金允植)·김만식(金晩植) 등과 같이 1883년 10월 30일 우리 나라 최초의 신문인 『한성순보(漢城旬報)』를 발간하였다. 그러나 민태호(閔台鎬)·민영익(閔泳翊) 및 민응식(閔應植)과 함께 이른바 사민체제(四閔體制)를 구축, 권력의 핵심인물로 부각되었다.
이로 인해 1884년 12월 갑신정변 때 병조판서로 김옥균(金玉均) 등 개화당 인사들에 의해 조영하(趙寧夏)·민태호 등 수구당 요인과 경우궁(景祐宮)으로 입궐하다가 참살당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고종실록(高宗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일성록(日省錄)』
- 『한성순보(漢城旬報)』
- 『갑신일록(甲申日錄)』
- 『음청사(陰晴史)』
- 『속음청사(續陰晴史)』
- 「개화당의 개혁운동」(김영호, 『한국사』 16, 국사편찬위원회, 1975)
- 「구미제국에 대한 통상수호조약체결」(이보형, 『한국사』 16, 국사편찬위원회, 1975)
- The Opening of Korea by Commander Shufieldt(Paullin, C. O., Political Science Quarterly 25-3,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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