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사간원정언, 홍문관부교리, 부응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관찰사로 부임한 지 7개월 만에 사간원대사간이 되었으며, 이어 강화부유수·형조참의·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뒤 1706년 의금부지사(義禁府知事)가 되었다. 이 때 유생 임보(林溥)가 세자 모해설(世子謀害說)을 발설해 일어난 옥사를 함부로 다뤘다고 해서 소론측의 탄핵을 받아 벼슬에서 물러났다.
1717년 또다시 기용되어 동지사(冬至使)로 청나라를 다녀온 뒤, 의금부판사·돈녕부판사·홍문관제학·예조판서 겸 수어사·한성부판윤·공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719년 의정부우참찬에 올랐으나 병으로 사양하고, 그 뒤 개성부유수로 재직 중 죽었다.
인품은 선비의 기운을 돋우고 사문(斯文)을 지키는 데 힘쓰며, 외척의 호화로운 습속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글씨에 능해 여양부원군민유중신도비(驪陽府院君閔維重神道碑)의 비문을 썼다. 경종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충문(忠文)이다.
저서로는『지재집(趾齋集)』이 전한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도암집(陶菴集)』
- 『만성대동보(萬姓大同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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