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김해(金海). 일명 김진동(金鎭東). 자는 동수(東秀), 호는 추산(秋山).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순창 출신.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어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되자, 1907년 원주 민긍호(閔肯鎬)의 의진에 가담하여 강원도 · 충청북도 · 경상북도에서 일본군과 싸워 큰 공을 세웠다.
1910년 일본에 의하여 국권이 침탈되자, 가산을 정리하여 태화상회(泰華商會)로부터 400여 개의 폭탄을 구입하여 경찰서 등을 폭파하려다가 실패하고 만주로 망명하여 대종교에 입교하였다.
1920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통신원으로 국내에 밀파되어 군자금을 모금하다가 이듬해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
1921년 5월 경성복심법원(京城覆審法院)에서 징역 3년을 언도받고 복역하였다. 1926년 전라북도 김제에서 다시 군자금 모금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전주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1977년에 대통령표창, 1980년에는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