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예진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 일제강점기
  • 현대
일제강점기 때, 의병 및 독립의군부 총무국 서기관으로 활동하며 항일운동을 전개하였고, 파리장서에 서명한 의병·독립운동가.
이칭
  • 송천(松川)
  • 수문(秀文)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장흥(長興)
  • 사망 연도1952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75년(고종 12)
  • 출생지전라북도 고창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광남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4년 05월 20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의병 및 독립의군부 총무국 서기관으로 활동하며 항일운동을 전개하였고, 파리장서에 서명한 의병·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수문(秀文), 호는 송천(松川).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고창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된 뒤 형제인 고용진(高龍鎭) · 고석진(高石鎭)이 최익현(崔益鉉)과 거사할 것을 계획하자 거기에 가담하였다.

1906년 4월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강회(講會)를 개최하고, 호서 · 호남 일대의 유생과 포수들을 규합하여 면암 최익현이 이끄는 의진이 구성되자 의병으로 참가하였다.

의진이 순창에 이르렀을 때 관군에 포위되어 싸우려고 하였으나, 최익현이 민족끼리 더 이상 골육상잔할 수 없음을 선언, 항전을 금지하였다. 그 때 체포되어 전주감옥에 투옥되었다가 곧 석방되었다.

1914년 고종의 명으로 임병찬(林炳瓚)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의 총무국서기관이 되고,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보낼 장서(長書)에 서명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면암집(勉庵集)』

  • - 『흥성지(興城誌)』

  • - 『벽옹김창숙일대기(壁翁金昌淑一代記)』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독립운동사』 1·3·8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