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김봉수(金鳳洙). 평안북도 정주 출신.
신민회(新民會) 회원으로 1911년 일제가 날조한 이른바 105인사건으로 징역 5년을 언도받아 복역하던 중 1913년 제2심에서 무죄로 석방되었다.
1914년 만주로 망명하여 은양학교(恩養學校), 신흥중학교(新興中學校) 등에서 교육활동을 펼쳤다.
1919년 부민단(扶民團)·자신계(自新契)·교육회(敎育會)의 세 단체가 통합하여 만든 한족회(韓族會)의 구정(區正)으로 독립운동을 벌였다.
1920년 9월 청산리전투에서 패배한 일본군이 보복으로 대학살을 벌일 때 유하현 삼원보에서 참살당하였다.
1963년 대통령 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