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운서(雲瑞), 호는 송재(松齋).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고창 출신.
1906년 4월 태인의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최익현(崔益鉉)이 강회(講會)를 가장하고 의병을 일으키자, 강종회(姜鍾會) 등 포수 30여 명을 이끌고 의병으로 들어갔다.
1912년 임병찬(林炳瓚)이 독립의군부를 조직하여 1914년 일본의 내각 총리대신과 조선총독 데라우치[寺內正毅]에게 국권반환요구서를 보내는 등 항일운동을 전개하자, 회계총관을 맡아 활약하였다.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보낼 장서의 서명운동도 전개하였다. 동생인 고예진(高禮鎭) · 고광순(高光洵) · 고광채(高光彩) · 고석진(高石鎭) 등도 독립운동에 가담하였다.
1983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