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군현(君賢). 호는 지강(芝岡). 아버지는 장사랑(將仕郞) 민재규(閔在圭), 어머니는 남원양씨(南原梁氏) 양천민(梁天民)의 딸이다. 어려서 그의 백부(伯父)에게서 수학하였다.
장성하여서는 학업이 괄목하게 되어 경지(經旨)의 해변(解辯) 등 사우 간에 추천을 받았는데 경사(京師)의 주선으로 집정(執政)에 알려져서 효문전 참봉(孝文殿參奉)에 임명되어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의영봉사(義盈奉事)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서원철폐령이 내려지자 정신(廷臣)들도 이에 대하여 함구하고 있는데, 그는 집정(執政)에게 100년도 지나지 아니하여 공론(公論)이 일어나서 집정(執政)의 성덕(盛德)에 누가 될 것이라고 논쟁하였었다. 조정에 불화의 환란이 일어날 조짐을 보고 벼슬을 물러나서 천하(天下)를 주류하였으며, 위도(蝟島)에 6년간 안치(安置)를 당하고 풀려나와 지리산(智異山)에 들어가서 지강정사(芝岡精舍)를 지어놓고 34인의 제자들을 가르치며 은거생활을 하였었다. 저서로는 『지강문집(芝岡文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