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지의금부사, 춘추관사, 좌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는 현민들을 안전한 곳으로 피난시켰다. 그 뒤 성균관전적·직강·예조좌랑·병조좌랑·사복시정 등을 차례로 지내고, 경기도사·수안군수에 이어 인천·부평·남양 등의 부사가 되어 가는 곳마다 치적이 있었다.
광해군이 즉위하면서 대사간에 임명하자 광해군의 패륜 행위를 못마땅히 여겨 사양했지만 참의로 임명되었다. 이어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사직하였다. 1613년(광해군 5) 폐모론이 일어나자 이를 적극 반대하고 시골로 내려가 은거하였다.
인조반정으로 대사간이 되었으며, 이듬해인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 때 병조참의로서 인조를 모시고 공주로 피난 갔다. 난이 평정된 뒤 돌아와 가선대부로 대사헌이 되었고, 이조참판을 거쳐 다시 대사헌이 되었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를 모시고 강화로 갔으며, 형조판서·좌참찬·우참찬·지돈녕부사·지중추부사 겸 지경연사·지의금부사·춘추관사 등을 역임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는 늙고 병든 몸으로 왕손을 호종하고 강화·교동·호서 등지로 피난했다가 난이 끝난 뒤 한성에 돌아와 좌참찬이 되었다. 시호는 정헌(貞憲)이다.
저서는『서포기문(西浦記聞)』이 있다.
참고문헌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명재유고(明齋遺稿)』
- 『대동야승(大東野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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