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태인현감, 봉산군수, 한성부서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군수로서의 임무에 충실하여 당시 도적떼인 임꺽정(林巨正)의 무리까지도 꺼릴 정도로 군민을 잘 보살폈다. 대구·이천·수원 등지의 부사(府使)와 광주(廣州)·양주(楊州)의 목사를 거쳐 한성부서윤(漢城府庶尹)·사재감정(司宰監正)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대구부사로 있을 때는 사육신의 한 사람인 박팽년(朴彭年)의 후손 박충후(朴忠後)가 대구에서 천역(賤役)을 하는 것을 노비문적에서 빼내어 천역을 면하게 하였다. 아우 박응순(朴應順)의 딸이 선조의 비(妃)가 되자 그녀에게 선조가 덕으로써 정사를 다스릴 수 있도록 내조에 힘쓸 것을 당부하였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어 가세가 몰락되었으나, 기울어진 가세를 다시 일으켰고 덕을 택하고 은혜 갚기에 전념하였다. 관직에 나아가 탐욕하지 않았고 명예를 얻으려고 힘쓰지 않았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백사집(白沙集)』
- 『잠곡유고(潛谷遺稿)』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대동야승(大東野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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