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응천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태인현감, 봉산군수, 한성부서윤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혼중(渾仲)
인물/전통 인물
  • 본관반남(潘南: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
  • 사망 연도1581년(선조 1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태인현감|봉산군수|한성부서윤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홍종필 (명지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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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태인현감, 봉산군수, 한성부서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혼중(渾仲). 박임종(朴林宗)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조정랑 박조년(朴兆年)이고, 아버지는 사간 박소(朴紹)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로 홍사부(洪士俯)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43년(중종 38) 성균시에 합격하여 왕자사부(王子師傅)가 되고, 이어서 태인현감(泰仁縣監)·호조정랑을 거쳐 봉산군수(鳳山郡守)가 되었다.

군수로서의 임무에 충실하여 당시 도적떼인 임꺽정(林巨正)의 무리까지도 꺼릴 정도로 군민을 잘 보살폈다. 대구·이천·수원 등지의 부사(府使)와 광주(廣州)·양주(楊州)의 목사를 거쳐 한성부서윤(漢城府庶尹)·사재감정(司宰監正)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대구부사로 있을 때는 사육신의 한 사람인 박팽년(朴彭年)의 후손 박충후(朴忠後)가 대구에서 천역(賤役)을 하는 것을 노비문적에서 빼내어 천역을 면하게 하였다. 아우 박응순(朴應順)의 딸이 선조의 비(妃)가 되자 그녀에게 선조가 덕으로써 정사를 다스릴 수 있도록 내조에 힘쓸 것을 당부하였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어 가세가 몰락되었으나, 기울어진 가세를 다시 일으켰고 덕을 택하고 은혜 갚기에 전념하였다. 관직에 나아가 탐욕하지 않았고 명예를 얻으려고 힘쓰지 않았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백사집(白沙集)』

  • - 『잠곡유고(潛谷遺稿)』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대동야승(大東野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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