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중부참봉을 역임하였으며, 『시문』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 중정(仲淨)
인물/전통 인물
  • 본관반남(潘南,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
  • 사망 연도1692년(숙종 18)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중부참봉
  • 출생 연도1629년(인조 7)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정자 (전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중부참봉을 역임하였으며, 『시문』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중정(仲淨). 할아버지는 대사헌 박응복(朴應福)이고, 아버지는 금계군(錦溪君) 박동량(朴東亮)이며, 어머니는 금계군의 측실(側室)인 장택고씨(長澤高氏)로 고전매(高傳梅)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만년에 중부참봉(中部參奉)을 지냈다. 출신이 서자로서 과거에 응시할 수 없음을 한탄, 변산(邊山)으로 이주한 뒤로는 본분을 지키며 문사(文史)를 즐길 때는 향려(鄕閭)들과 같이 하였다.

준결(峻潔)한 천성에 조행이 의롭고 고아한 문사(文詞)로 식견이 탁월하여 명성이 알려지자 지방의 사류 중에 박사에게 배우려는 자가 많았고, 당대의 문인 신익상(申翼相)이 박사를 찾아 담론하기도 하였다.

‘충효백직(忠孝白直)’ 네 글자를 가훈으로 삼았으며, 윤증(尹拯)·박태보(朴泰輔)와 친하였다. 저서로는 시문 4, 5권이 전한다.

참고문헌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