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무안(務安). 자는 계헌(季獻). 호는 도와(陶窩). 절도사 박의장(朴毅長)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영천이씨(永川李氏)로 참봉 이지영(李之英)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문명을 날렸으며 유진(柳袗)·장현광(張顯光)에게 사사받았다.
의지가 강직하여 벽에는 ‘궁불실의(窮不失義)’라는 자경문 4자를 써두고 경성(警省)하였다. 1629년(인조 7) 도백(道伯)의 추천으로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제수되었으나 사임하고 향리에 돌아와 후진 양성에만 전념하였다.
죽은 뒤 후인들이 그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도계사우(陶溪祠宇)를 창건하여 향선생(鄕先生)으로 봉향하였다. 저서로는 『도와집(陶窩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