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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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국담박선생문집』, 『학문유해』, 『의례견문해』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 경로(景老)
  • 국담(菊潭), 숭정처사(崇禎處士)
인물/전통 인물
  • 본관밀양(密陽)
  • 사망 연도1652년(효종 3)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572년(선조 5)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오석원 (성균관대학교, 유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박수춘의 국담문집 중 표지 미디어 정보

박수춘의 국담문집 중 표지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국담박선생문집』, 『학문유해』, 『의례견문해』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경로(景老), 호는 국담(菊潭) 또는 숭정처사(崇禎處士). 동몽교관(童蒙敎官) 박신(朴愼)의 아들이다. 가학(家學)을 이어받았으며 『소학』을 항상 애독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97년 정유재란 때 의병을 모집하여 창녕의 화왕산성(火旺山城)에서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싸웠다. 1618년(광해군 10)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위문제에 대하여 춘추대의(春秋大義)로써 그 부당성을 지적하는 상소를 지어 올렸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창의(倡義) 격문을 돌려 의병을 일으켰으나, 화의(和議) 성립의 소식을 듣고 산중에 들어가 숭정처사로 자처하며 학문을 깊이 연구하여 많은 저술을 남겼다.

또한, 정구(鄭逑)·장현광(張顯光) 등과 이기설(理氣說)을 토론하는 등 성리학의 연구에 힘썼다. 1672년(현종 13) 통정대부(通政大夫) 호조참의에 추증되었고, 1694년(숙종 20) 대구의 남강서원(南岡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국담박선생문집(菊潭朴先生文集)』·『독서지남(讀書指南)』·『학문유해(學問類解)』·『도통연원록(道統淵源錄)』·『동방학문연원록(東方學問淵源錄)』·『의례견문해(疑禮見問解)』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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