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양지 ()

목차
고대사
인물
남북국시대, 숙위학생으로 당나라에서 유학하여 빈공과에 급제한 통일신라의 학자.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남북국시대, 숙위학생으로 당나라에서 유학하여 빈공과에 급제한 통일신라의 학자.
내용

숙위학생으로 당나라에 머무른 바 있다. 신라 하대에는 도당유학생들이 오랫동안 당나라에 체류하면서 빈공과(賓貢科)에 급제하고서도 귀국하지 않는 사례가 많아, 신라조정에서는 당나라에 요청하여 이들을 강제 귀국시켰다. 825년(헌덕왕 17) 신라의 이러한 요청으로 박계업(朴季業) · 최이정(崔利貞) · 김숙정(金叔貞) 등 4명이 소환되었다.

이 때 박양지는 조공사(朝貢使) 김흔(金昕)을 따라 김윤부(金允夫) · 김입지(金立之) 등 12인과 함께 당나라에 가서 박계업 등과 교체되어 숙위학생이 되어 당나라의 국자감에서 수학하였다. 그 뒤 빈공과에 급제한 것으로 추측된다. 귀국 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가 없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동사강목(東史綱目)』
『책부원귀(冊府元龜)』
「신라하대(新羅下代) 빈공급제자(賓貢及第者)의 출현(出現)과 나당문인(羅唐文人)의 교환(交驩)」(이기동, 『전해종박사화갑기념사학논총(全海宗博士華甲紀念史學論叢)』,일조각, 1979)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