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밀양(密陽). 충렬왕(忠烈王) 때 매와 개를 잘 다루어 총신(寵臣)이 되었다.
1276년(충렬왕 2) 낭장으로 매를 바치러 원나라에 다녀와 응방(鷹坊)을 관리하였다. 그 뒤 장군이 되어 여러 차례 원나라에 다녀왔으며, 1283년 응방도감을 설치하였을 때 부사(副使)가 되었다.
박의는 꼬리의 깃이 14개나 달린 진귀한 새매[鷂]를 원나라 황제에게 바치고 돌아와 황제의 명으로 대장군이 되었다고 자칭하여, 그 뒤 대장군으로 원나라에 매를 바치러 다녀왔다.
그 뒤 충렬왕 비 장목왕후(莊穆王后: 齊國大長公主)의 뜻에 거슬려 섬으로 유배되고 가산이 몰수되었으나, 곧 풀려나와 1291년우부승지·좌승지가 되었으며, 1294년에는 좌복야로 서북면도지휘사가 되었다.
1297년에는 부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로 원나라에 다녀왔고, 이어 지밀직사사 세자원빈(知密直司事世子元賓)이 되었다. 충선왕(忠宣王)이 즉위하자 동지자정원사(同知資政院事)에 올라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가 더해지고 밀양군(密陽君)에 봉해졌다. 박의는 부자였으나 인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