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문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성균관전적, 사헌부감찰, 병조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중례(仲禮)
고심재(高心齋)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73년(현종 14)
사망 연도
1743년(영조 19)
본관
무안(務安)
주요 관직
성균관전적|사헌부감찰|병조좌랑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성균관전적, 사헌부감찰, 병조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무안(務安). 자는 중례(仲禮), 호는 고심재(高心齋). 박규(朴䅅)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박창하(朴昌夏)이고, 아버지는 승지 박징(朴澄)이며, 어머니는 목임형(睦林馨)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99년(숙종 25)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1721년(경종 1) 통덕랑(通德郞)으로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1723년에는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사헌부감찰을 거쳐 1727년(영조 3)에는 병조좌랑이 되었다.

이어 1729년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을 역임하고, 1737년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이 되어 성학을 돈독히 하고 큰 원칙을 세우고 탕평책을 시행할 것을 주장하여 왕의 가납을 받았다.

참고문헌

『영조실록(英祖實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국조방목(國朝榜目)』
『사마방목(司馬榜目)』
『순암문집(順庵文集)』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