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무안(務安). 자는 중례(仲禮), 호는 고심재(高心齋). 박규(朴䅅)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박창하(朴昌夏)이고, 아버지는 승지 박징(朴澄)이며, 어머니는 목임형(睦林馨)의 딸이다.
1699년(숙종 25)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1721년(경종 1) 통덕랑(通德郞)으로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1723년에는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사헌부감찰을 거쳐 1727년(영조 3)에는 병조좌랑이 되었다.
이어 1729년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을 역임하고, 1737년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이 되어 성학을 돈독히 하고 큰 원칙을 세우고 탕평책을 시행할 것을 주장하여 왕의 가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