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우승지, 한성부우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496년 좌부승지 · 한성부우윤을 거쳐 대사헌이 되어, 임금이 경연에 참석해서 직접 어진 선비와 대부들을 면접하여 성학(聖學)을 넓히고, 관작(官爵)이 범람해짐을 경계할 것을 주장하였다.
또, 환관 김효강(金孝江) 등이 정치에 참여하자 이들에게 죄줄 것을 청하였으며, 왕이 불교를 숭상하기 위하여 소상재(小祥齋) · 대상재(大祥齋) 등을 마련하자 이를 반대하며 경계할 것을 주장하였다.
1497년에 동지중추부사로서 명나라에 가서 효종의 생신을 축하하고 돌아온 뒤 강원도관찰사로 나아갔으며, 1499년에 다시 한성부우윤이 되었다. 문장에 능하였다.
참고문헌
- 『성종실록(成宗實錄)』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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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본관 및 가계 : : 『국조문과방목』 卷之三(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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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三(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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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불교행사 반대 : 『연산군일기』 20권, 1496년(연산 2) 12월 22일. "구치곤이 불교를 숭봉하는 일, 신계원의 제수 등에 대해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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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명나라 행 : 『연산군일기』 22권, 1497년(연산 3) 4월 8일. "동지중추부사 구치곤을 명나라로 보내 황제의 탄신을 하례하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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