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이 압록강을 건너 서북면에 침입하여 개경(開京)을 점령하였을 때 전지문주사(前知文州事)로서 이듬해 개경을 수복한 공으로 1363년에 수복경성1등공신(收復京城一等功臣)에 서훈되었다.
예의판서(禮儀判書)를 거쳐 1375년(우왕 1)에 양광도안무사(楊廣道按撫使)를 역임하였다. 1376년 왜구가 부여와 공주에 침입하니 목사 김사혁(金斯革)이 싸워 패전하자, 양광도원수로 회덕감무(懷德監務) 서천부(徐天富)로 하여금 이를 구원하게 하였다.
그러나 원조하지 않자 서천부를 처단하고, 연산(連山: 지금의 논산) 개태사(開泰寺)에서 왜구와 싸우다 말에서 떨어져 전사하였다.
평소에 인심을 얻어 현장(賢將)이라 불리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