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원빈(元賓), 호는 근암(近菴).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순창 출생. 참봉 박영근(朴榮根)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김녕김씨(金寧金氏)이다. 송병선(宋秉璿)의 문인으로, 1893년(고종 30) 성균박사에 입선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망국의 울분을 참고 삶을 자처할 수 없다 하고, 오적(五賊)과 왜적을 토멸, 국권을 회복하자는 뜻으로 ‘토복(討復)’이라는 두 글자를 써서 암약적으로 항일정신을 고취시켰다.
고향의 죽림 사이에 회계당(晦溪堂)을 짓고 주자(朱子)의 영정을 모시면서 후진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경사(經史) · 상수(象數) · 의약(醫藥) · 병형(兵刑) · 천문 · 지리 등의 많은 책에서 요점을 간추려 「일기」와 「잡지(雜識)」를 만들었으며, 한말의 중요한 사건을 기록한 「한말록(韓末錄)」을 남겼다.
박인섭의 학문은 분석적인 해석보다는 근본원리를 자유롭게 종합적으로 통찰하는 것이 특징이며, 우주의 본체는 이기이원(理氣二元)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이와 기는 공간적으로 분리되거나 선후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저서로는 『근암집(近菴集)』 12권 4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