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수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 충숙왕 사후에 왕호를 옹립하려던 조적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녹훈되었으나, 충목왕 즉위 후 실정으로 탄핵된 관리 · 공신.
이칭
이칭
학성군(鶴城君)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울산
관련 사건
조적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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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고려 후기, 충숙왕 사후에 왕호를 옹립하려던 조적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녹훈되었으나, 충목왕 즉위 후 실정으로 탄핵된 관리 · 공신.
생애 및 활동사항

충숙왕(忠肅王)이 죽자 심왕(瀋王) 왕호(王暠)를 옹립하려던 조적(曺頔)의 무리를 제거하는 데 세운 공로로 1342년(충혜왕 3) 학성군(鶴城君)으로서 2등공신에 제수되고 아울러 토지와 노비가 하사되었다.

그 뒤 뇌물을 받고 인사행정을 함부로 하였는데, 1344년에 충목왕(忠穆王)이 즉위하자 이제현(李齊賢)이 박인수의 실정을 탄핵하였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세종실록(世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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